▲ 관동마을은 이름에서 부터 벼슬을 뜻하는 ‘관’자가 있어 벼슬을 한 이들이 많이 나는 골이라 전한다. 사진은 마을전경, 갓모양 돌기둥, 마을회관, 송정공원, 송정공원 내 정자, 표지석 등이다.

관동마을은 백운산의 갈비봉을 지나 쫓비산으로 오르는 등산코스의 시작점으로 유명하다. 
쫓비산은 해발 537m에 지나지 않은 작은 산이지만 매화마을을 둘러싸고 있어 매화가 만개하는 3월이면 등산객들이 매화도 볼 겸 자주 찾는다. 호남정맥이 끝나는 백운산 동편 산줄기에 솟은 갈비봉은 관동마을에서 1시간이면 오를 수 있다.

■ 마을형성과 유래
관동마을은 본래 광양현 동면(東面) 다압리(多鴨里)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다압면에 속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1600년 경 경남 진주에 살던 청주정씨(清州鄭氏) 부부가 꿈에 선친이 나타나서 서쪽을 가리키며 말없이 서 있다가 사라졌다고 한다. 
이를 괴이하게 생각한 부부는 다음날 이삿짐을 꾸려 서쪽으로 정처없이 길을 걸었는데 경남 하동에 이르렀고, 강 건너에서 이곳을 바라보니 기골이 장대한 장군이 손짓을 하여 다가가 보니 그 장군은 온데간데없고 넓은 터가 있어 이곳에 정착하게 됐다고 전한다. 
이후 경주정씨(慶州鄭氏)가 이 마을에 들어와 마을을 형성했다고 전한다.
관동마을은 ‘깃골’ 또는 ‘귀잇골’ 등으로 구전되어 오는데 이는 기골이 장대하고 훌륭한 사람, 즉 벼슬을 한 이들이 많이 나는 골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깃골’을 한문식으로 바꾸면서 관동(官洞)이 됐다고 사람들은 전하고 있다. 
현재 마을 앞 버스정류장 건너편에는 갓 모양을 한 돌기둥이 세워져 있다. 옛말의 변천 과정에서도 ‘관동(官洞)=귀잇골’ 즉 그 지역의 가장자리를 뜻하는데, 옛날 섬진강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마을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가장자리의 가장은 ‘갓’에서 유래된 우리말로서 갓→가상→가장으로 변화를 거쳤는데 여기서 ‘갓’을 한문으로 쓸 때 벼슬을 뜻하고 머리에 쓰는 갓에 의미를 두어 관동(官洞)으로 쓴 것으로 추정된다.

■ 마을 지명과 송정공원
관동마을은 60여 호의 가구가 사는 마을로 그 규모가 상당하다. 
그래서인지 마을에는 안터, 괴음정, 상관동, 평지땀, 남촌 등의 자연마을이 또 다시 존재한다. 
평지땀은 상관동 동쪽의 평지에 있는 마을로 ‘평지평’이라고도 부르는데, 관동마을회관 바로 우측에 있다.
 ‘괴음정’은 평지땀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며, ‘남촌’은 평지땀 남쪽에 있었던 마을을 뜻한다.
‘안터’는 상관동 북쪽 안에 있는 마을로 1969년 정부 보조로 집을 짓고 터를 닦아 새로 마을을 만들어 근처에 흩어져 있는 외딴집을 모두 이곳으로 옮겨 살도록 했는데, 이곳 근처를 ‘웃소정’이라고 부르고 있다.
웃소정이 구례방향으로 향하는 윗마을을 뜻한다면 마을 반대쪽에는 ‘아랫소정’이 있다. 
아랫소정에는 현재 송정공원이 조성돼 있다. 
‘아랫소정’은 예전에 많은 노거송이 우거져 천혜의 절경을 이루어 지나는 이들의 쉼터가 되었으나 1973년 취수장 건립시 노거송 등 쉼터가 사라졌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던 마을주민들은 1999년 동절기 공공근로사업으로 송정공원을 새롭게 조성했다. 현재 송정공원 내에는 공원을 새로 조성한 내용을 포함한 기념비가 마련돼 있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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