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목마을은 참나무에서 나는 도토리가 많이 나는 마을로 잼비산 능선에 자리하고 있다. 사진은 마을전경, 마을회관, 당산나무, 노정공 재실, 정자 등이다.

진목마을은 진상면 청암리와 진월면 차사리 경계에 있는 잼비산(116.8m) 능선에 자리한 마을이다. 청암리 삼정마을이 수어천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뒤편이 바로 진목마을인 셈이다. 삼정마을에서 진목마을 사이에는 삼정치 고개가 있어 왕래 가능하며, 진목마을 옆으로는 항동마을이 있다.

■ 홍씨가 살았다는 홍천골
진목마을은 본래 광양현 동면(東面) 진하리(津下里) 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에는 진하면에 속했고 1789년경 호구총수에는 진하면 직목촌(直木村) 지역이었다.
이 마을은 약 370년 전 밀양박씨(密陽朴氏)가 처음 입촌해 마을을 형성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마을 부근에서 임진왜란의 피해가 있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이 시기보다 앞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진목마을은 오래전부터 참나무가 많이 있어 도토리를 많이 주었다고 한다. 마을입구 ‘청룡등’이라는 산등에 자연생 참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 이곳을 참나무쟁이 또는 참나무징이라 불렀다. 그러다가 이를 한문식으로 바꾸면서 직목(直木)에서 진목(眞木)으로 변화됐고, 그 이후 이곳에 정자(亭子)가 있어 진목정(直木亭)이 됐다가 현재는 다시 진목(眞木)이라 부르고 있다.
현재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수고 15m, 수령이 250년 된 정자나무(팽나무)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으며 그 아래에 정자(亭子)가 있어 주민들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다. 
진목마을 뒷산 너머 동쪽, 즉 수어천의 하구인 진상면 삼정마을과 진월면 중산마을 사이에 ‘홍천골’이라는 골짜기에는 옛날 홍씨(洪氏)들이 동성촌을 이루고 부유하게 살았는데 임진왜란 피해로 지금은 사라졌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이곳을 ‘홍천골’ 또는 ‘홍촌동’이라고 부르며, 지금의 홍천골은 그때의 홍씨들을 기리는 의미의 특정지명이 됐다.

■ 노정공 기리는 재실 건립
진목마을에서 사동마을으로 가는 북쪽에 몇 호의 가구가 따로 떨어져 살고 있는데 이곳을 야수댕골이라 한다. 야수는 여우를 뜻하는 말로 옛날 이곳에 야수(여우)를 닮은 바위더미기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 바위더미를 야수드미, 야사등(野蛇嶝)이라고 부른다.
진목마을회관에서 우측으로 200m를 가다 보면 1979년에 건립한 노정재(蘆汀齎)란 재실이 있다. 이 재실은 중산마을과 항동마을에서 동성마을을 이루게 한 노정공 박봉우가 약 370년 전 장흥에서 이곳으로 이주한 것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됐다. 약 50년 전 박봉우의 후손 박봉래(제17대 진월면장)는 학교 방학을 이용해 이곳 재실에서 한문 강습과 우리 고유의 생활 법도를 가르쳤다고 전한다.
마을 출신 인물로 고종 12년(1875년) 문과에 등과하여 사간원(司諫院) 경연과 사헌부(司憲府)의 지평(持平)을 역임한 안창범(安昌範)이 있다. 조선조를 통하여 8명의 광양인이 문과에 등과했는데 안창범은 그 중의 한사람이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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