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억만마을은 말을 멈춰 쉬어갔다는 어마정에서 유래된 마을이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마을전경, 마을회관, 사곡보건진료소, 마을벽화, 사라실예술촌, 효자비 등이다.

억만마을은 마로산 동쪽 앞자락에 자리한 마을로 사곡 사라실예술촌(구, 사곡초등학교)과 맞닿아 있다. 마을 앞으로는 억만천이 흐리고 억만교를 통해 마을로 들어서면 약 300년 된 마을 보호수인 팽나무가 그 위세를 뽐낸다. 마을 안쪽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마로 산성으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어마정의 유래
억만마을은 본래 광양현 동면(東面) 사라곡리(沙羅谷里)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사라곡면(沙羅谷面)에 속했다. 1789년경 호구총수에는 사곡면(紗谷面) 본정촌(本井村)지역으로 어마정(禦馬亭)이라 했다.
억만마을을 어마정(禦馬亭)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는 마로산성의 입구가 되는 이곳을 지나던 장수들이 산성(山城)에 오르기 전에 말을 멈춰 쉬어갔다는 정자(亭子)가 있었던 데서 유래한다.
억만마을은 1872년경부터 문헌상으로 통정리(桶井里)와 제비리(蹄飛里) 마을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통정은 억만마을에서 호암마을쪽 우측에 위치한데 현재는 통천(桶泉)이라고 부르며, 제비리는 억만마을에서 광양읍쪽에 위치한데 현재는 금너리라 부르고 있다.
억만마을은 진주정씨(晋州鄭氏)가 처음 마을에 정착했다고 전하며 통천마을은 좌평윤씨가 처음 정착했다고 하나 두 곳 모두 입촌연대는 알 수 없다. 통정이 통천으로 변한 것은 마을 뒷산에 통샘이라는 우물이 있는 데서 유래됐다.
‘금너리’는 본래 ‘굽너리’라 했는데 문헌상으로 제비리라 하여 마을형국이 말굽이 날아가는 모습이라는 뜻을 지닌 이름으로 일제 강점기 시대 이곳에 금광이 생김에 따라 이와 관련하여 굽너리가 ‘금이나는 고장’이란 뜻인 ‘금너리’로 변화됐다.

■폐교에 재탄생된 사라실예술촌
억만마을에는 폐교에서 재탄생된 사라실예술촌이 있다. 사곡초등학교가 2007년 폐교되면서 건물이 방치되고 있었는데 광양시가 이듬해 사곡초 부지를 매입하고 지역의 문화예술 저변 확대를 위해 예술촌 조성을 추진한 것이다. 그 결과 2017년 사라실예술촌이 개관하게 되어 현재 일반 주민과 지역의 예술가들이 문화예술복지 서비스 공연, 세미나, 강연 등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억만마을은 담장벽화를 통해 예술적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그림재능기부자의 지원을 받아 마로산성으로 오르는 시골길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효자 정치재비, 효부 이천서씨비, 열부 달성서씨비, 효자 정운익 효행비 등 효행비가 많은 고장이기도 하다.
마을 앞에 있는 억만교는 1932년 준공되어 중요한 교통편익을 도모해 왔는데 국도선이 변경되고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현재는 마을간 교통도로로 이용되고 있다. 
현재 억만교와 사라실예술촌 사이에는 2009년 준공된 사곡보건진료소가 있어 지역민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사라실예술촌 건너편에 위치한 주유소의 서쪽 도로변에 바로 인접하여 삼한시대의 유물이 발견되면서 이 지역을 억만유물산포지로 부른다. 따라서 이 고장에 사람이 살았던 시기는 서기 약 200년 경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현재 억만유물산포지는 밤나무와 작물재배, 그리고 논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도로확장으로 인하여 절개된 부분에 불규칙한 할석열과 함께 원삼국시대 유물인 회청색 경질토기들과 회색 연질토기들이 노출되어 있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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