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百花軒(백화헌) 
                                          매운당 이조년

        꽃 심기 그만하고 두어 가지 채우시게
        눈 속 매화 서리국화 깨끗한 가지에서
        허량한 자줏빛 꽃과 부화 꽃이 많다네.
        爲報栽花更莫加    數盈於百不須過
        위보재화갱막가    수영어백불수과
        雪梅霜菊淸標外    浪紫浮紅也漫多
        설매상국청표외    낭자부홍야만다

 

 

사군자는 매란국죽(梅蘭菊竹)이다. 매화는 이른 봄눈이 채 녹기도 전에 추위를 무릅쓰고 제일 먼저 꽃을 피우며, 난초는 깊은 산중에서 은은한 향기를 제일 먼저 퍼뜨린다. 국화는 늦가을에 첫 추위와 서리를 이겨내며 꽃을 피우고, 대나무는 모든 식물이 잎을 떨어뜨린 추운 겨울에도 푸르고 싱싱한 잎의 기상을 간직한다. 그래서 이들은 각각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서에 따른다고 했겠다. 눈 속의 매와 서리 속의 국화의 기상을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눈 속의 매화와 서리 속의 국화의 깨끗함(百花軒)으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매운당(梅雲堂) 이조년(李兆年:1269∼1343)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알리노니 꽃 심는 것 더하지 말고 / 백화헌에 두어 가지만 채우고 지나치지 말게 // 눈 속의 매화와 서리 속의 국화의 그 깨끗한 가지 밖에 / 허랑한 자주빛 꽃과 부화한 붉은빛 꽃은 헛되이 많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꽃이 많이 핀 백화헌에서]로 번역된다. 사군자는 모든 식물이 두려워하는 추위를 이겨 찬바람과 눈보라 속에서 꽃을 피우고 푸르름을 더하는 매화 국화 대나무와 깊은 산중에 홀로 피어 고고히 향기를 뿜어내는 난의 기상을 높이 샀다. 이와 같이 눈 속의 매화와 서리 속의 국화 이외에 어떠한 꽃도 헛되다고 하는 데서 시적인 배경이 되고 있다.
 시인은 여러 사람들에게 알린다고 하면서 잡된 꽃을 더하지 말라는 것으로 시적인 분위기를 일으킨다. 그리고 백화헌에는 불과 몇 가지의 꽃을 심어 채우는 것으로 그냥 지나치지 말고 당부한다. 뿐만이 아니다. 시인은 그것이 은근하게 사군자의 고고함이야 비하겠느냐는 비아냥까지도 서슴없이 부린다.
 그래서 화자는 사군자인 매화와 국화를 한껏 칭송한다. 매화는 눈 속에서 피어나고, 국화는 서리 속에서 그 풍만한 자태를 자랑이나 하는 듯 꽃망울을 터뜨린다고 하는 시상을 일으킨다. 그럼에도 백화헌에는 자줏빛 꽃과 붉은 빛 꽃이 허황되게 많다는 시심으로 채우고 있음을 본다. 사군자는 선현들이 좋아했으니, 화자도 사군자의 기상을 높이 사고 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꽃 심는 것 그만두고 백화헌을 채우시게. 매화 국화 가지 밖에 부화한 꽃이 많다네’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매운당(梅雲堂) 이조년(李兆年:1269∼1343)으로 고려의 문신이다. 가른 호는 백화헌(百花軒)으로도 알려진다. 1294년(충렬왕20)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340년(충혜왕 원년) 정당문학에 승진, 예문관 대제학이 되어 성산군에 봉하여졌다. 시문에 뛰어났으며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한자와 어구】
百花軒: 집 이름. 백 가지 꽃을 심은 집 / 爲報: 알리다. 栽花: 꽃을 심다. 更莫加: 다시 더하지 말라. 數盈: 두어 가지. 於百: 백화원에. 不須過: 지나치지 말라. // 雪梅: 눈 속의 매화. 霜菊: 서리 속의 국화. 淸標外: 깨끗한 가지 밖에. 浪紫: 허랑한 자줏빛. 浮紅: 부화한 붉은 빛. 漫多: 헛되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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