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자도 몰랐다

김주현 씨는 도통 식물과는 인연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식물들은 꼬박꼬박 물을 주고 볕을 보여줘도 주현씨 손에서 죽어나갔다. 지인에 따르면 산에서 나무를 뿌리 채 뽑아 심어도 죽이는 사람이 주현씨였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3년차 농사꾼이 됐다.

주현씨는 원래 건축설비소장이었다. 소장을 맡았던 10년간 단 한 번도 현장에 하자가 발생하지 않아 믿고 맡기는 소장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때문에 혼자 12개의 공사현장을 관리하기도 했다.

한창 승승장구 하던 때, 어머니에게서 급한 연락이 왔다. 큰형이 암으로 입원했다는 소식이었다. 진월에서 파프리카 농사를 짓던 큰형의 병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당장 파프리카 하우스 2동을 관리할 사람도 없었다. 형수는 주현씨에게 하우스 관리를 부탁했다. 3개월을 고민하다 결국 타지생활을 청산하고 201012월 귀향했다. 큰형은 이듬해 설날을 이틀 앞두고 눈을 감았다.

이후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큰형의 하우스 1동을 맡았지만 농사의 자도 몰랐다. 외국인근로자도 7명이나 있었으나 다들 비슷한 상황이었다. 몸으로 부딪히며 독학으로 농사를 시작했지만, 3년간 월급 한 푼 받지 못했다. 당시 아내는 둘째 임신으로 만삭의 몸이었다. 퇴직금으로 외국인근로자들의 끼니까지 챙기며 버텼지만, 어느 날 형수가 사라졌다. 하우스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후였다.

 

반전의 계기 미니파프리카

원래 하던 일을 다시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다. 농사일도 알면 알수록 재밌어지던 참 이었다. 주현씨는 좌절하지 않고 10년 계획을 세웠다. 다른 농장에서 일하며 경쟁력 있는 작물을 고민하다 미니파프리카를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600평의 작은 하우스를 지었다.

당시 미니파프리카는 한국에 들어 온지 20년 정도 된 작물이었지만 농사짓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기존 파프리카보다 키우기 까다롭기도 했고 잘 팔리는 작물이란 인식이나 판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왜 미니파프리카를 선택했냐고 묻자 주현씨는 남들이 잘하지 않는 작물이라 더 끌렸다고 호기롭게 웃었다.

시작부터 순조롭길 바라는 건 욕심이라 했던가. 하우스 완공이 늦어지는 바람에 10월에 공사가 끝났다. 미리 씨앗도 준비해놨지만 파종하기엔 늦은 시기였다. 육묘도 잘하지 않는 시기였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모종을 심었다.

모종은 다행히 쑥쑥 자라, 당도 높은 미니파프리카를 수확할 수 있었다. 그 결과 20185월 광양원예농협 수출물류센터를 통해 홍콩으로 미니파프리카 90kg을 수출하며 판로를 개척했다. 수출 장려 일환으로 시에서 박스 제작비와 물류비도 지원받았다.

 

Okay, 계획대로 되고 있어

미니파프리카는 천적을 이용한 농법으로 친환경인증센터로부터 무농약 인증을 받았다. 닭과 지네가 천적이듯, 해충을 잡아먹는 유익충을 이용해 병충해를 예방한다. 호주에서 수입되는 허가된 유익충을 이용하고 있다.

유익충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들어가는 비용이 다르다. 같은 천적을 이용해도 관리를 하지 않으면 해마다 목돈이 들어간다. 주현씨는 최소 투자 최대 효율을 위한 다양한 시도로 최대한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그 덕에 해마다 투자비는 낮아지고 효과는 높아졌다.

주현씨는 작물은 주인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을 믿게 됐다그만큼 많이 돌아다니고 관리해주라는 뜻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니파프리카는 현재 홍콩수출 외에도 로컬마트나 급식 재료로도 납품 중이다. 물량확보가 어려울 때가 있어 적당한 시기에 하우스를 늘릴 계획이다.

10년 계획을 위해 애플망고와 백향과 농사도 짓고 있다. 경쟁력 있는 작물을 찾기 위해 이것저것 심은 결과다. 주로 열대과일을 심어보는데 테스트는 항상 세 딸들이 맡는다. 딸부자 주현씨는 건강하게 키운 열매를 아이들에게 먼저 선보인다. 맛에 솔직한 아이들은 맛있으면 다 먹기 때문에 공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이후 키우기 쉬운지, 가격이 적절한지 등을 따져보고 키울지 말지 결정한다.

이처럼 주현씨의 작물은 아이들로부터 시작된다. ‘미니들농원미니도 아이들의 돌림자인 을 따서 지었다. 하우스 안에는 민이들에게 테스트 해볼 날만 기다리는 망고스틴과 잭푸르트도 있다.

주현씨는 특히 잭푸르트는 심은지 4년이 넘었는데 한번도 열매를 맺은 적이 없어 언제 먹어보나 싶다며 껄걸 웃었다.

 

건설설비소장에서 어쩌다 농사꾼이 된 주현씨. 하루 종일 하우스에서 살다시피 하며 자연인이 다됐다. 산으로 들로 뛰놀던 때를 돌이켜보면 농사가 천성이고, 천직인 게 분명하다. 촉촉한 수분, 아삭한 식감, 상큼한 맛과 영양까지 풍부한 미니파프리카처럼 그의 농사꾼 라이프도 해마다 풍성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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