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영동 가야산 자락에 한 사람의 35년 꿈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 있다. 그곳 명품원에서 분재와 조경수를 가꾸고 있는 박환성 선생은 퇴직한 지금도 매일이 즐겁다.

박 선생의 분재와 조경수는 그의 인생의 다른 표현이다. 나무의 운으로 시련을 딛고 일어선 나날이 쌓여 오늘에 이르렀고 앞으로의 인생에도 나무는 늘 그와 함께한다.

박 선생은 지난 1986년도에 포스코 그룹에 합격한 뒤 같은 해 8월 한창 조성 중이던 광양제철소로 발령받았다. 고향인 부산을 떠나 포항을 제2의 고향으로 생각했던 차에 낯선 광양에서의 적응은 쉽지 않았다.

매일같이 사직서를 품고 출근했던 박 선생은 우연한 계기로 분재를 접하고 처음으로 인생의 목표가 생겼다. 지인의 화원에 자리한 매화와 아기 사과나무가 박 선생의 마음을 흔들었다.

돈 없는 젊은 시절 나에게 돈이 생기면 저 나무들을 키워야겠다는 마음이 움텄다. 심지어 자다가도 분재 생각에 벌떡 일어날 정도로 나무사랑은 중증(?)이 됐다. 그 이후 한두 그루씩 나무를 사서 키우기 시작했다.

일본 나무 전시회에도 참가하고 국내 내로라하는 분재 전문가 12명과 함께 고풍회를 결성해 전시회를 여는 등 열정을 쏟았지만 주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박 선생은 “80년대 당시만 해도 돈 벌어서 나무 산다고 하면 미친놈 소리를 들었다그럼에도 나무에 대한 관심을 꺽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박환성 선생은 포스코에서 20년을 근무하고 이후 철도설비를 생산하는 포스코 계열사로 옮겨 15년을 더 몸담는 동안에도 항상 나무와 함께했다.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노력으로 지금은 모과나무와 소사나무, 보리수나무, 소나무 등 완성도 높은 300여점의 분재와 정원수 18점을 보살피고 있다. 일본 분재협회가 인증한 귀중 분재5점 소장하고 있다.

지난 2007년 제28회 아시아태평양 분재 우호 연맹대회 분재산업 박람회에서 일반인으로는 드문 성과도 거뒀다.

작품성을 높게 평가받은 모과나무 분재가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호응을 받아 대상에 해당하는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것이다.

명품원은 국내 분재 동호인에게는 꼭 들러야 하는 필수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인근 순천만정원에 왔다가도 꼭 들러 분재를 감상하는 동호인이 점점 늘고 있다. 10년 전부터는 국제적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해외에서도 찾아오고 있다.

분재의 품격 자연스러움에서 나와

박 선생은 나무의 종류와 본래 타고난 모습에 맞는 자연스러운 모양새에 따라 분재의 품격이 달라진다 고 말했다. “많은 분재인들이 일반적으로 아름답다고 말하는 분재를 만들기 위해 고개를 숙이게 하거나 옆으로 퍼지게 만드는 작업을 하는데 이는 도리어 나무를 망치는 일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무도 사람처럼 가지고 태어난 바탕이 모두 제각각이기 때문에 개성을 살리고 매력을 키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주인이 자기의 주관을 나무에 투영하면 안된다는 일침이다.

이러한 기준 때문에 박 선생은 1365일이 부족할 정도로 일이 많다. 나무마다 수분섭취와 공간 확보, 통풍, 볕의 양 등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갓난아이를 보살피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나무를 돌보고 있다.

제때 물을 주고 비료 관리와 분갈이 등 기본적인 부분은 물론 정원수의 가지를 솜씨 좋게 관리하는 고소작업도 필요하다. 매일의 상태에 따라 영양제를 주고, 잎과 뿌리를 잘라주는 등 섬세한 작업도 중요하다.

박 선생은 사람도 스스로의 힘만으로 바로서기 어려운 것처럼 나무도 항상 옆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살피고 도움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열정을 가지고 내가 좋아서 오늘 즐겁고 행복한 마음만으로 나무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적으로 자식의 안녕을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국내에서 정원수를 다룰 수 있는 전문가가 부족하다. 때문에 많은 일을 박 선생이 직접 할 수 밖에 없다. 아직도 매일같이 분재 및 정원수와 무언의 대화를 나누며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게끔 만들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

박 선생은 “30년이 넘게 이 분야에 관심을 쏟고 있지만 나의 분재관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안목과 기술을 겸비한 전문가의 조력이 중요하다전국에 분재 동호인이 100명도 채 안될만큼 분재의 저변이 약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광양시도 신안군이나 남해군, 제주시 와 같이 규모가 큰 수목원을 조성해 분재를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 박환성 선생의 주장이다. 실제로 세종시도 이러한 관심을 가지고 수목원을 조성중이다. 하지만 광양의 경우 아직 관심도가 떨어지는게 현실이다.

박 선생은 일본 분재의 저변은 지난 100여년의 경험이 쌓여 만들어진 만큼 우리나라도 긴 시간을 두고 투자와 관심을 통해 오랜기간 노하우를 축적하는 인내가 필요하다순천이 순천만정원이라는 자원으로 입소문을 탓 듯 광양지역을 대표하는 생태예술자원으로 분재를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광양 분재 알리기 지금부터 시작

박환성 선생은 이달 중순부터 분재 애호가들을 명품원으로 초청해 다과와 식사를 함께하며 광양 분재의 격과 아름다움을 알리는 일을 시작할 예정이다.

또한 10월 순천만국가정원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정원산업박람회이후 방문객에게 명품원의 작품을 해설하는 행사도 개최할 계획이다. 일단 소규모 행사부터 시작해 점차 활동 범위를 넓혀간다는 구상이다.

박 선생은 나무에게 평생의 동반자로 부족함 없는 많은 선물을 받았다고 했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나무를 돌봐야 했기 때문에 평생 건강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회사에서도 꾸준히 나무를 가꾸는 모습을 보고 목표를 향한 집념과 열정을 인정받아 고위직까지 승진할 수 있었다고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박환성 선생은 매일 300명이 넘는 자식들이 자신의 도움으로 오롯이 명품원 한켠을 빛내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한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광양에서 맨땅에 헤딩한다는 생각으로 살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나무를 매개로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인생이라고 말한다.

광양시대는 박 선생이 구상하는 인생 2막이 꼭 아름다운 결실로 피어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이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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