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_최예리 기자
사진_최예리 기자

“‘장도’는 어릴 적 바랐던 여러 꿈들 중 하나였습니다. 아버지가 대한민국 장도의 시작인 할아버지를 따라 가업을 잇는 게 참 멋있어 보였어요. 할아버지가 소중히 여기던 장도를 아버지가 소중하게 보존하는 모습에 저도 그 가치를 이어가고 싶었습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 장도장 이수자 박건영(23) 씨는 18세에 진로를 정했다. 2015년 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에 내린 결정이었다. 보통 사람들처럼 해보고 싶은 일이 많았지만, 장도에 대한 선망이 더 컸다. 대를 이어 지켜온 전통을 유지하는 것. 건영 씨는 ‘할아버지처럼 인간문화재가 될 거’라 외치고 다녔던 어릴 적 다짐을 지키기라도 하듯, 장도에 입문했다.

건영 씨는 스스로 ‘재능이 없는 타입’이라 말한다. 단지 예술적 감각이나 손재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스승인 아버지와 환경적인 덕도 컸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보고 자라 보조의 수련 과정을 짧게 거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보조로 10년가량 허드렛일을 하는 대신, 전수장학생으로 빠르게 기술을 배웠다.

비록 영화나 드라마처럼 천부적인 재능은 없었지만, 꾸준히 배워나갔다. 쉽지 않은 길이었고, 갈팡질팡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과 욕심이 컸다.

그 결과 건영 씨는 지난 10월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이 실시한 ‘2020년 국가무형문화재 이수심사’에 5년만에 통과했다. 3대에 걸쳐 광양 장도 전승계보를 잇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꿈에 한 발 더 내딛게 됐다.

이수자가 되면 문화예술교육사 2급 자격이 주어지고, 다양한 문화예술시설에서 활동 할 수 있다. 국가가 지원하는 전승활동에도 참여 가능하다. 그는 이 자격들로 장도장 이수자로서의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본 목표는 전통문화가 지닌 가치를 현대에 적용하는 것이다.

건영 씨는 “지금까지 이수자인 어머니와 형이 장도를 알리기 위해 다양한 교육 사업을 진행해왔다”며 “이제 나도 주체가 되어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장도를 알리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고 설명했다.

박건영 이수자의 작품. 왼쪽부터 대추나무백동을지도, 대추나무은장을지도, 대추나무은장팔각도
박건영 이수자의 작품. 왼쪽부터 대추나무백동을지도, 대추나무은장을지도, 대추나무은장팔각도

그는 이전에 1대 故박용기 장도장 이수자인 어머니와 형과 함께 보조강사로 교육 사업에 참여해왔다. 때문에 장도를 알리는 데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다. 또한 현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장도에 깃든 멋과 의미를 잊지 않길 바란다.

건영 씨는 “이수자가 스승을 따라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과의 쌍방향 소통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혼자 작업장에 틀어박혀 기술에만 집중하기보다, 가치와 고유함을 알리고 공유하고 싶다”고 미소 지었다.

더불어 ‘장도의 쓰임은 시대에 따라 다르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처럼, 건영 씨는 그가 살아갈 시대의 장도를 만들어나가려 한다.

과거 장도는 대중적으로 사용하던 생활용품이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늘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일상생활에 사용하거나 몸을 보호하고 장신구로도 이용했다. 신분에 따라 재료와 크기, 모양이 달랐지만 오랜 세월 역사와 함께 해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장도는 사용보다 소장의 의미가 커졌다. 그러나 완전한 공예품으로 보기엔 한계가 있다는 시각이다. 그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돌파구를 찾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계획하고 있다.

건영씨는 “사회가 빠르게 변하는 만큼 전통의 의미와 가치도 중요해졌고, 새로워졌다”며 “장도도 그저 옛 공예품이 아닌 중요한 문화유산으로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통의 계승과 답습을 혼동해선 안된다는 교수님과 아버지의 가르침을 새기고 있다”며 “장도와 함께 현대금속공예를 더 깊게 배워 대중과 시장경제에 통용될 수 있는 전통을 잇고 싶다”고 강조했다.

원광대에서 금속공예학을 전공하고 있는 건영 씨는 곧 4학년에 복학할 예정이다. 졸업 후엔 군대에 가야하지만, 이수자 심사 통과로 마음의 부담을 덜었다. 대학원은 제대 후 진학하겠지만 그 전에 앞으로의 포부를 더 구체적으로 설계하려 한다.

건영 씨는 “힘든 길을 선택한 아들들과 후손을 위해 장도의 안정적인 제도와 환경을 만들어 가는 아버지에 보탬이 되고 싶다”며 “아버지가 해왔던 것처럼 ‘보유자’를 향해 꾸준히 작업해 먼 훗날에도 장도가 튼튼히 대를 이어 가길 바란다”고 말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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