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체험농장 서예신 부부
남정체험농장 서예신 부부

아직도 지난주 갑작스레 내리던 눈의 기억이 선명하다. 그야말로 펑펑 쏟아지던 하얀 솜사탕 선물에 당황하며 이른 기상을 했더랬다. 빨간 털모자에 노오란 패딩 거기다 털장화까지 챙겨 신고 새벽부터 땀을 흘렸다. 대빗자루 들고 길을 쓸고 다니는 내 모습에 어쩐지 행복해 웃음이 났다. 어릴 적 눈밭을 뛰어 놀던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그 덕에 아주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했다.

산속에 있다 보니 수도관까지 터져 버리는 추위가 매섭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기막힌 풍경이 나를 반겨주기도 한다. 처마 밑 대롱대롱 매달린 기다란 고드름, 눈 위에 새겨진 짐승들 발자국…
그림 속 한 장면들이다.

2020년은 코로나19로 자의반 타의반 농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됐다. 유튜브를 보며 새로운 농사법도 배우고, 농업기술센터 다니며 유기농업기능사 자격증도 따는 등 농사의 기본을 배우는 한 해 였다.

그리고 고사리가 우리의 1차 목표가 됐다. 요즈음 우리 농장에서는 ‘고사리를 고사리답게 키워보자’는 목표로, 틈틈이 괭이, 낫, 삽 등 농기구와 간식 가방을 지게에 지고 산을 오르고 있다.

먼저 고사리가 잘 자랄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 주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칡, 오래된 잡풀 등이 들어차 고사리가 군데군데 죽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낫을 이용해 풀도 뽑고 넝쿨도 뜯어내고, 칡이 나오면 잘 보이게 칡 줄기를 표시해둔다. 그러면 남편이 괭이로 칡뿌리 앞부분을 파 버린다. 이렇게 하다보니 저절로 분업화가 됐다.

뽑은 풀들은 모아 돌배나무 밑에 수북하게 쌓아준다. 이렇게 하면 나무가 덜 춥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썩으면 퇴비가 되겠지 싶어 꾹꾹 눌러 준다. 하루 이틀 하다 보니 산이 밭으로 바뀌어 가는 것 같다.

그 와중에 남편은 땅을 파고 돌을 골라내 조그마한 오솔길을 만들었다. 남편은 “도로는 직선이고 속도지만 길은 곡선이며 느림과 인간화”라고 말한다.

그가 다져놓은 오솔길을 오고 가며 한번 씩 걸어본다. 일주일 만에 동산 하나를 마무리 했다. 역시 사람의 손으로 못할게 없다.

남편이 내게 “인간포크레인”이라며 웃는다. 나도 따라 웃었다. 올 겨울은 이렇게 동산을 하나하나 더듬으며 보내야 할 것 같다.
올해엔 코로나19도 옴짝달싹 못하도록 모두 건강하게 지내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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