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민, 서예신 부부 (남정체험농장)
장성민, 서예신 부부 (남정체험농장)

농촌의 겨울은 참 할게 많다. 따뜻하고 촉촉한 겨울은 더 그렇다.
사람들이 물어 본다. 요즘은 할 일 없지? 뭐하고 지내?  농한기라 펑펑 노는줄 아나 보다. 그나마 올해는 화목보일러에서 펠렛보일러로 바꾸어서 한결 수월하다. 몸은 편해졌는데 난방비가 장난이 아니다. 땔감 해 대는일 더 이상 못하겠다고 두 손 들어버리는 남편 때문에 바꾸긴했는데 화목보일러에 대한 그리움이 자꾸만 커져간다.

올겨울은 비가 자주 와 땅이 촉촉해 벼르던 묘목심기를 마무리 했다. 삽목해 놓았던 개나리 수십그루를 파다 개나리 길을 완성하고, 애기동백 10그루도 자기자리를 찾아 줬다. 마지막 녹차심기 작업은 꽤 고난도 작업이다. 깎아지른 경사도에 바위 투성이라 두발 딛고 서 있기가 힘들 정도다. 남편이 끝이 뾰족한 괭이로 바위 사이사이 흙을 파서 공간을 내 주면 내가 묘목을 심고 흙을 잘 덮어 꾹꾹 눌러주고 낙엽도 덮어준다. 잠깐 한눈 파는 사이 괭이가 인간 포크레인 손가락을 찍어 버린다. 너무 아파 소리를 질러본다. 아파 눈물은 줄줄 흘러 내리는데 어이 없어 웃음이 나온다. 타이밍이다!  그렇게 나의 피와 눈물로 심어 놓은 녹차밭이 꽉 차 보인다. 그냥 좋다.

주말을 이용해 매실나무 전정 끝. 전동전정가위로 작업을 해 보니 작업 능률이 쑥쑥이다. 신문물을 만난것 같다. 남편이 전정해 주면 내가 나뭇가지들을 모아서 중간 중간 묶어 둔다. 나뭇가지 줍는데도 등에서 땀이 촉촉하다. 신문물 전동가위를 사용해 보고 싶어 졸라 보지만 어림 없다. 넘보지 말고 조수 본분에 충실하란다.  호시탐탐 노려보지만 헛일이다.

1월 중순 어느날 전화벨이 울린다. 동네 부녀회장님이다.

“어이 동네 어르신들이 날씨는 춥고 설은 돌아 오고 머리를 해야 되겠는데 어찌 안되겠는가? 코로나 땜시 어렵겠지만…” 코로나 방역 2단계 상황이라 잠시 망설였지만 의논해 본다고 하고 통화를 마쳤다. 마침 옆에 있던 남편이 무슨 일 생기면 어떻게 책임을 질거냐며 난리다. 우리 미용동아리 정미 대장에게 전화해 상황을 얘기하니 소수 몇 명만 가서 해 보자 한다. 그 말이 얼마나 고맙던지.

오래 비워둔 마을회관에 추울까봐 전날부터 보일러를 틀어 놓고 기다리시는 어머님들. 코로나 방역 규칙들을 지켜 가며 한 두 분씩만 들어와 염색도 하고 커트도 하시고 파마도 하신다. 염색만 하고 파마는 설 사흘전에 한다는 금순이 아지매. 왜 그러시냐니까 “영감 제사가 그때여 맞춰서 할라고” 하신다. 그 말에 설 즈음에 또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만다.

“우리같은 할마니들땜에 고생들해서 어쩌까?” 하시는 두레 아지매 말에 “어머니, 덕분에 저희들이 힐링하고 가요, 언제든 부르면 올게요”라고 활짝웃는 우리 경희언니, 언니들 뒤치다꺼리 다하며 염색을 도맡아하는 우리 정숙이. 그리고 우리를 통크게 이끌어주는 대장 정미. 다들 너무 고마운 사람들이다. 집순이인 내가 어떻게 이렇게 사랑이 넘치는 사람들과 인연이 되어서 같은 길을 가고 있을까? 생각할수록 신기하기만 하다. 농장을 일구며 같은 곳을 바라보는 가족들 그리고 나눔을 같이 실천해 가는 이분들과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농촌 정착은 성공적이지 않을까 싶다.

농장 초입 현수막에 새겨진 “험한 길도 함께가면 즐겁다” 는 신영복 선생님의 글귀가 오늘따라 입에 착 달라 붙는다.  오늘도 아침 일찍 의자들과 미용도구들을 챙기며 설레는 하루를 맞이한다.

모두들 立春大吉 建陽多慶 하시고 설 명절 잘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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