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름 가득하던 남정마을 들녘에 하나 둘 물이 채워져 가고 트랙터가 요란한 기계음 소리와 힘으로 평야를 지배해 버린다. 거대한 기계들의 당당한 귀가 뒤엔 젖은 흙덩이들이 길 여기저기에 나뒹굴며 운전하는 사람들의 양해를 구한다. 구불구불 곡선모양의 논둑과 물이 출렁출렁 넘실대는 논바닥은 멋진 풍경화가 된다. 그리고 또다시 초록빛 점들이 퍼져 나간다. 밤마다 개구리 교향곡이 연속재생, 무한반복으로 연주되는 것은 또 하나의 보너스일 것이다. (사실 난 그 보너스는 사양하고 싶기도 하다)

산에 포크레인이 몇 번 툭툭 긁어내려 만들어진 야채밭은 폭이 좁아서 최신 기계로 작업하긴 힘들고 삽과 괭이로 파고 낫과 호미로 풀을 제거하며 일구는 산달뱅이 밭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덜컥 산 비싼 관리기 세트는 모셔만 두고 있다.

그곳에서 고추며 배추 등 웬만한 먹거리는 다 해결하고 있다. 실패만 하던 마늘도 올해는 아주 만족스런 결과물을 안겨 주었다. 더군다나 뿍- - 뿌우욱 소리를 내며 마늘쫑 한번 뽑아 보는 내 소원도 원없이 이루어 주었다.

그러기까지는 자칭 수력발전소의 힘이 크다. 마늘 심어 놓고 부엽토 두둑하게 덮은 후에 남편은 밤마다 혼자 산에 올랐다. 헤드랜턴까지 끼고 말이다. 얼마 후에 마늘순들이 시간차를 두고 쑥쑥 올라들 온다. 얼마나 실하게 올라오는지 밤마다 조리로 물을 수북하게 주었다고 한다. 몇 십번을 왔다갔다 했을지 미루어 짐작해볼만하다.

농장 중턱엔 3톤 크기의 통 2개와 10여개의 크고 작은 통들이 연결되어 있고, 집에서 모터로 물을 끌어 올려 통에 받아서 농사용으로 쓰고 있다. 수 십 번의 시행착오 덕분에 지금은 비교적 쉽게 물을 받아쓰고 있다. 그건 내 입장이고 남편은 여전히 물 받는 날이면 여러 번 오르락내리락 집과 산을 오간다.

얼마 전 소주도 한잔 걸쳤는데 랜턴까지 챙겨 들고 산에 산책가자는 남편. 갑자기 고추밭 옆 물통위로 올라가더니 불을 비춰 달랜다. 고무호스가 새서 며칠째 고치려하는데 잘 안되고 있다나. 불빛 앞에 쭈그리고 앉아 온 힘을 다하고 있는 그 모습에 웃음도 나지만 남편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이 우러난다. 덕분에 고추가 쑥쑥 크고 있다. 절반은 고라니가 먹어 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우리 부부는 남편의 작품을 감히 수력발전소라 부른다.

요즈음 남정마을엔 밤꽃이 한창이다. 초록 드레스에 하얀 레이스를 풍성하게 매단 채 달콤한 내음으로 벌들을 유혹하고 있다. 벌들의 날개짓 소리가 남정농장의 아침을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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