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농장 장성민·서예신

잠에서 깨어 물 한 모금 마시자 몸이 부르르 떨린다. 그릇에 남아있던 나머지 물마저 꿀꺽 마셔버린다.

약간의 포만감이 온몸을 감싼다. 어둠 속 희미하게나마 사물의 실루엣이 보이자 두툼한 옷을 챙겨 입고 농장을 나선다.

농장 중턱쯤에 다다르면 집을 나설 때의 차가운 냉기가 어느새 사라지고 따뜻한 기운이 온 몸에 퍼져 있다. 내친김에 소나무 숲 미니 둘레길도 서너 바퀴 걸어본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어느 날부터인지 설거지할 때면 물이 시원하게 쏟아지지 못하고 줄줄줄 새는 느낌이다. 세탁기 돌리는 시간도 점점 길어진다. 세탁기가 오래되어 그러나 싶어 세탁기도 새것으로 바꿔 보았지만 여전하다.

오랜 가뭄으로 인한 물 부족이 그 원인이 아닐까 싶다. 농사용으로 쓰던 관정을 새로 정비해 10여년을 써 왔는데 큰일이지 싶다.

당장 체험장이 문제라 주암호 상수도도 연결하고 지대가 높아 이번에 펌프까지 새로 연결해 해결했다.

고추,가지 모종하는 5월 그리고 배추모종하는 9월.

매일밤 남편은 농장 중턱의 큰 물탱크에 모터로 물 받느라 집과 농장을 오르락 내리락… 한밤중이 돼서야 들어온다. 그렇게 받아 놓은 물은 각각의 조그만 통으로 연결되어 아주 요긴하게 산달뱅이 채소들의 갈증을 해소해주고 있다.

당연하게 펑펑 써 왔던 물들이 이렇게 줄어들 수 있다는 사실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편리함만 좇을게 아니다. 농장 초기에 장마 때 흘러내리는 빗물이 아까워 통마다 받아서 쓰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로 돌아가야만 될 것 같다.

오래전부터 남편은 농장 군데군데 비가 오면 물이 고일 수 있도록 웅덩이를 만들자고 한다.

남편은 날마다 산에 올라가 뭔가를 하는 눈치다. 빙긋이 웃기만할 뿐 얘기를 하지 않는다. 뜬금없이 읍내 가는 길에 몰타르 시멘트 두 포대를 사 오라고 한다 . 며칠이 지난 후 따라나선 농장 산책길에 떡하니 보이는 것은 빗물저금통이었다.

우리농장에는 큰 바위들이 군데군데 많이 자리잡고 있다. 녹차밭과 돌배밭 사이에도 우리들의 쉼터가 되어 주었던 널따란 바위가 있다. 바위 주위를 깨끗하게 치우고 바위 가장자리에 물이 새어 나가지 못하게 시멘트를 발라 턱을 만들어 놓았다.

그것만이 아니다. 바위위로 떨어지는 물이 한곳으로 향하도록 한 다음 호스와 관을 고정시켜 통을 3단으로 설치해 놓았다.

3단 빗물저금통이다. 물을 통에 담아가 시범운행을 해보았다. 다음날 또 그다음날도  그곳은 새들의 목을 축이는 샘터가 되어 있었다. 

시멘트를 발라 약간의 인위적 냄새가 나서 조금 아쉽지만 우리의 빗물저금통 1호다.

해먹도 타고 뛰어노는 우리농장의 숲속 놀이터에도 2호 빗물 저금통을 만들고 있다. 아침운동이 끝나자 오늘도 삽 한자루 들고 통 가져다 놓을 터 닦으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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