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균 광양시청 총무과 팀장

5월 두 번째 주말 오늘따라 미세먼지도 없는 깨끗한 하늘에 바람마저 적당한 좋은 날씨다.

전날 내려온 딸을 위해 가족들과 쇼핑을 하고 돌아왔더니 오랜만에 북적이는 곳에 다녀와서인지 피곤이 몰려왔다.

깜빡 졸았을까. 눈을 떠보니 청명했던 밖은 어느새 어둠이 짙게 내려앉았다.

습관처럼 휴대폰을 확인하는데 문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언뜻 ‘故’자도 보이고 친구 이름도 눈에 띈다. 스팸문자가 들어왔나 싶어서 그냥 지나가려다 혹시나 해서 문자를 열었더니 친구와이프가 보낸 문자였다.
친구가 오늘 생을 마감했다는…

나는 충격을 받은 나머지 망부석처럼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아내에게 친구이야기를 했더니 나 보다 더 놀랜다. 지금 장례식장으로 가봐야 할 것 같다고 했더니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가는 게 좋겠다며 만류한다.

친구를 잃은 슬픔과 믿기지 않은 현실에 대한 혼란스러움이 뒤범벅된 남편을 밤운전으로 보내는 아내 맘도 편치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이는 밤을 보내고 해가 뜨자마자 친구의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해 채비를 했다.  내 벗이 간 저 하늘은 눈물나게 화창하고 맑다.

이렇게 좋은 날을 더 이상 보지 못하고 하늘로 올라간 친구를 보러 가려니 마음이 착찹했다.

그 녀석과 나는 고등학교 때 같은 반으로 3년 내내 친하게 지냈고 마음이 통해 거의 붙어 다녔다.

공부한다는 핑계를 만들어 친구 집에서 신세를 지는 날이 많았고 우리 부모님도 그 친구와 함께 하는 모든 시간에 늘 허용적이셨다.

그렇게 그 녀석과 나는 사춘기의 질풍노도를 함께 보냈고 대학 졸업 후 붙을지 떨어질지도 모르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중에도 변함없이 늘 반겨주던 친구였다.

그 친구는 육류 유통사업을 했고 10년 전 쯤 사업이 어려워져 처가가 가까운 익산으로 올라간다고 했다.

거긴 여기보다 나을 거라고 하며 말이다. 마음은 늘 한결같아도 몸이 멀어지니 연락은 자연스레 뜸해졌다.

친구는 사업 시작과 실패를 반복하며 가세가 많이 기울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어떤 모습이더라도 변함없는 내 친구, 내 단짝이 이제 내 곁에 없다.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너무 서운하게 했나보다. 그래서 이 친구가 멀리 갔나보다 자책의 마음까지 들었다.

복잡한 심정에 장례식장 주차장에서 한참을 서 있다 입구를 들어섰다.

상가를 알리는 모니터 앞에서 친구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니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 치는 것을 느꼈다.

한때 친구는 신학대를 다녔고 전도사로도 활동했지만 경제적인 문제로 다시 생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여러 번의 사업 실패로 택배 일을 했던 친구는 새벽 5시 반에 출근해 7시 반에 퇴근하는 고된 일을 7년 동안 했는데 얼마 전부터 몸이 안 좋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런 친구가 병원 문턱을 넘지도 못하고 갑자기 잠을 자다가 심장마비로 일을 당했다고 한다. 한참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3명의 딸자식을 두고 어찌 눈을 감았을까.​

친구가 생전에 내 얘기를 참 많이 했다고 한다. 미망인이 아이들에게 “아빠 친구 분이셔. 인사드려” 하는데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은 왜일까.

친구가 마지막으로 사준 밥을 먹고 있는데 목이 메었다.

이제 쉰을 조금 넘었을 뿐인데 야속하기만 하다.

​친구가 장례식장을 떠나는 날, 한참동안 영구차 뒤를 바라보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친구가 이 세상에 있는 마지막 날도 어제와 같이 날씨가 좋다. ‘반평생 잘 놀다 아픔 없는 곳으로 간다’는 친구의 대답인 것 같아 위안은 되지만 가슴에 메어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오늘 저녁 술 한잔 걸치고 넋두리를 할 성 싶다.

“하늘에 계신 엄마! 내 친구 종택이 올라가요. 제가 많이 못 챙겨줬는데 벌써 엄마 계신 곳으로 가버렸어요. 엄마가 대신 우리 종택이 좀 잘 챙겨 주세요”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광양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