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봉애 시인

울 너머 빨간 장미가 목울대를 토해내는 6월, 새떼들의 요란한 지저귐 사이로 일렁이는 유월 빛이 따갑다.

나름의 생존 방식으로 자연의 질서를 순응하며 살아가는 유월의 숲속은 다양한 삶의 방식들이 존재한다.

평화롭게만 느껴진 숲속에도 영역 다툼이 벌어지고 한 때의 어스름이 있고 아포소리와 철모를 눌러쓴 어린 병사들의 두려움이 그 속에 배여 있다.

유월은 현대사의 아픔 6.25전쟁, 보훈의 깃발이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붉은 상흔으로 꽂혀 있는 달이다.

몇 해 전 6.25전쟁 특집 방송 다큐를 통해 보았던 강원도 화천 백암산 기슭에 널브러져 있는 비목(碑木)을 본 기억이 생생하다. 그날 이후 해마다 유월이 오면 가슴 한편이 애잔해 옴을 느낀다.

특히 올해 유월은 더 그렇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시 상황 속에 말없이 죽어간 수많은 병사들과 국민의 주검을 뉴스로 접하며 21세기 믿기지 않은 실제 상황이 공상 소설을 읽는 것만 같아 두렵고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지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

20대 초반 ‘비목’ 노래를 부르며 슬픈 멜로디에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었다. 이별가처럼 마음을 쓸어내리는 애잔함과 그리움이 배여 있어 이 노래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과 이유를 몰랐으니 “그저 슬픈 노래구나”했었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먼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파/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 비목 중에서-

비목은 죽은 이의 신원을 나무에 새겨 무덤 앞에 세우는 비다. 권력과 부 공로를 인정한 화려한 비문도 아닌 비목, 강원도 화천군 백암산 계곡 비무장지대를 순찰하던 한 청년 장교가 잡초에 우거진 이끼 낀 무명용사의 돌무덤 하나를 발견하고 6.25때 숨진 무명용사의 무덤인 듯 옆에는 녹슨 철모가 있었고 무덤 머리의 십자가 비목이 썩어서 무너질 듯 보였다고 한다. 전역을 하고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젊은 병사의 비목이 가슴에 맺혀 가사를 쓰고 작곡가 선생님한테 곡을 부쳐 탄생한 노래가 비목이다.

6.25 전투가 치열했던 백암산 깊은 계곡, 어린 나이에 두려움과 굶주림 그리고 그리움에 떨었을 어린 병사들과 주검 앞에 내몰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병사들을 생각하니 촉촉해 오는 눈시울이 어미의 마음처럼 슬프다.

조국을 위해 산화한 젊을 넋을 기리는 비목 노래는 전쟁의 아픔과 말없이 죽어간 병사들의 넋을 달래며 비목에 잠들었다.

소피아로렌이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 해바라기가 스쳐간다. 우크나이나 광활한 해바라기 평온이 배경이 된 영화, 열차를 탄 여 주인공이 전쟁에 나간 남편의 생사를 모른 채 사진 한 장을 들고 찾아 헤매는 영화 속 장면이 현실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넓은 평온에서 해바라기꽃을 활짝 피울 수 있는 평화로운 일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유월, 비목에 잠든 이들의 죽음 앞에 한없이 숙연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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