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寄遠(기원) 

                                               익재 이제현

 

        기쁜 일 한이 되고 공명도 이별이네

        가련하다 술잔 앞 비추는 밝은 달은

        변성 말 타는 사람에 돌아와서 비추네.

        懽樂翻敎恨懊新     功名只管別離頻

        환락번교한오신     공명지관별리빈

        可憐畫閣樽前月     還照邊城馬上人

        가련화각준전월     환조변성마상인

서울을 떠나 있거나 집을 떠나 변방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리움의 한 덩어리를 품에 안게 된다. 그 한은 술을 마시거나 시문을 지어 시름을 달래기도 했다. 휘엉청 달빛까지도 그 한을 알고 술잔을 비추는가 하면 변성을 떠도는 사람에게까지 비추었던 모양이다. 작자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다. 벼슬길에 나가면 지방 근무는 예외 없었을 테이니까. 말을 타고 변방을 지키는 외로운 사람에게 달이 비추어 더욱 슬프게 했었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부귀 공명도 이별을 여러 번 만들 뿐이라네(寄遠)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1286~1367)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기쁜 일이 도리어 한이 되게 만들게 되니 / 부귀 공명도 다만 이별을 여러 번 만들어 줄뿐이네 // 가련하구나, 저 누각의 술잔 앞을 비춘 밝은 달은 / 변성 말 위를 타는 사람에게 돌아와 비추구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멀리 있는 사람에게 보냄]으로 번역된다. 통신의 가장 정확하고 손쉬운 수단은 역시 서찰이었다. 전달자가 발신자와 수신자의 중간 역할을 말로 혹은 눈빛으로 전달하는 친근성이 묻어있기 때문이겠다. 늦게 전달되어 망정이지 오히려 현대의 우체부보다는 훨씬 더 친근성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데 착안된 것이 시적인 배경이다.

시인 전달한 서찰을 보면서 마음으로 다른 한(恨)을 만들어 낸다. 기쁜 일이 도리어 한이 되게 만든다고 했다. 희노애락을 함께 품고 사는 우리 인간에게 어쩌면 시름을 달래는 격에 꼭 맞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공명도 다만 이별을 여러 번 만들어 줄뿐이라고 했으니. 그래서 서찰의 효능을 이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위와 같이 생각한 화자는 소식을 전하는 전달자와 수신자를 향하여 오히려 ‘가련하다’고까지 말한다. 그리고 제 3의 상관적 대상물이란 ‘달’을 동원하는 시적인 멋을 가만히 부려본다. “가련하구나, 저 누각의 술잔 앞을 비춘 밝은 달은 변성 말 위를 타는 사람에게 돌아와 비추구나”라고 했으니 말이다. 시인만이 간직한 언어의 멋과 맛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기쁜 일이 한이 되니 부귀공명 이별이네. 술잔 앞에 비춘 달은 말탄 사람 비추구먼’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1287~1367)으로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시인이다. 다른 호는 역옹(櫟翁)으로도 썼다. 어린 시절부터 학문에 밝아 성리학을 고려에 처음 들여온 백이정에게 배우고 당대의 대학자 권보의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1301년 성균시에 1등으로 급제했다 한다.

【한자와 어구】

懽樂: 기쁜 일. 翻: 도리어. 번복하여. 敎: 하여금. 恨懊新: 새로운 한이 되다. 功名: 공명. 只: 다만. 管別離: 이별을 만들다. 이별에 관계하다. 頻: 여러 번 // 可憐: 가련하다. 畫閣: 화려한 누각. 樽前月: 술잔 앞의 달. 還照: 돌아와 비추다. 邊城: 변성. 땅 이름. 馬上人: 말 위를 타다. 말에 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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