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風荷(풍하) 

                                                   졸옹 최해

 

        새벽 목욕 끝내고 거울에 맥 빠져서

        천연스런 아름다움 무엇에 비하리오

        얼굴에 화장기 없어 그 얼굴에 천사가.

        淸晨瀮罷浴    臨鏡力不持

        청신림파욕    임경력부지

        天然無限美    摠在未粧時

        천연무한미    총재미장시

이른 새벽에 하는 목욕은 하루를 여는 상쾌함을 더한다고 한다. 간혹 아침 목욕은 피곤함을 더하니 저녁에 하는 것이 좋다는 사람도 더러는 있다. 그러나 아침 목욕에 습관이 된 사람들에게는 더 없이 좋다고 한다. 이런 생활습관은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남자가 그의 시문에 여성스럽게 표현했던 경우도 상당히 있었다. 작자도 예외는 아니었던지 아침 목욕을 하고 난 후에 풍만한 자기 볼을 보면서 얼굴이 예쁘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화장대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이 더욱 예쁘네(風荷)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졸옹(拙翁) 최해(崔瀣:1287∼1340)로 고려 말의 문신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이른 새벽 목욕을 막 끝내고 나서 / 거울 앞에 멍하니 맥이 빠져 앉아 있는데 // (아! 풍만한 이 얼굴이) 천연스러운 이 아름다움이련가 / 화장대 앞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이 더 예쁘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바람 앞의 연꽃]으로 번역된다. 잔잔한 수면 위, 연꽃 한 송이가 이제 막 솟았다. 막 목욕을 마친 어여쁜 아가씨의 청초한 맵시다. 힘이 쪽 빠져서 고개 갸웃 숙이고 거울 같은 수면에 제 얼굴 비춰본다. 어여쁜 분단장은 하지 않았다. 이따금 이슬을 떨구면서 거울에 조용한 파문을 일게 한다. 그녀의 아름다움, 내 가슴이 뛰면서 두근거린다는 점이 시적인 배경이 되고 있지는 않을까 본다.

 위와 같은 생각이 미친 시인은 좀더 예뻐 보이려는 여성의 깊은 시심의 세계로 몰입되고 만다. 이른 새벽 목욕을 막 끝내고 나서 거울 앞에 멍하니 맥이 빠져 있는 상황은 누구나 경험했던 일이다. 목욕한 후의 기분이야 다소 상쾌할 지는 모르겠지만 힘이 빠지는 그런 상황은 누구나 경험했던 일이다. 오리려 이런 일을 여과 없이 그려내고 있음을 본다.

 그래서 화자는 그 모습을 오히려 천연스런 모습이 ‘아름다움이 아니런가!’ 라는 탄식어를 사용하고 만다. 화자는 다시 이어지는 시상에서 시적인 반전을 시도해 본다. ‘화장대 앉아 있는 내 모습이 더 예뻐’라고 하면서… 여성스러운 정갈함이 한껏 묻어나는 수작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이른 새벽 목욕하고 거울 앞에 앉았는데, 천연스런 아름다움 내 모습은 더욱 예뻐’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졸옹(拙翁) 최해(崔瀣:1287∼1340)로 고려 말의 문인이다. 다른 호는 예산농은(猊山農隱)으로 알려진다. 최치원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민부의랑 최백륜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학관을 거쳐서 예문춘추검열이 되었다. 장사감무로 좌천되었다가 뒤에 예문춘추주부로 기용되었다.

【한자와 어구】

淸晨: 맑은 새벽. 瀮: 젖다. 罷浴: 목욕을 마치다. 臨鏡: 거울 앞에 앉다. 力不持: 몸을 가누지 못하다. // 天然: 천연. 변화시킬 수 없는 상태. 無限美: 한량없이 곱다. 예쁘다. 摠在: 모두가 있다. 전부 예쁘다는 의미를 담는다. 未粧時: 화장하지 않을 때. 아직 단장하지 않았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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