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마을은 안골(내려)이라는 옛 마을터에 세풍 간척지 조성에 따른 새 마을(부흥)을 포함한다. 사진은 위에서 부터 마을전경, 장영모 선생 공덕비, 세풍 보건진료소, 세풍초등학교, 마을회관 순이다.
부흥마을은 안골(내려)이라는 옛 마을터에 세풍 간척지 조성에 따른 새 마을(부흥)을 포함한다. 사진은 위에서 부터 마을전경, 장영모 선생 공덕비, 세풍 보건진료소, 세풍초등학교, 마을회관 순이다.

부흥마을은 세풍고가 아래에 있는 세승교차로 바로 우측 변에 위치한 마을로 세풍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내려골((內閭)이라는 자연부락이 먼저 형성되었다가 1957년 세풍간척지 조성사업 후 신작로를 따라 부흥마을이 새로 생겼다. 현재 부흥마을은 광양시 광양읍 세풍리(법정리) 행정리상 부흥(復興)이라 하며 부흥(富興)과 내려(內閭)를 포함한다.

■다시 부흥하는 마을

부흥마을은 본래 광양현 남면(南面) 인덕리(仁德里)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 는 인덕면(仁德面)에 속했고 1789년 호구총수에는 인덕면의 도계촌(道溪村)지역으로 추정된다. 1872년 광양현 지도에는 내려리(內閭里 : 안골)라 표기되어 있다.

부흥은 새 길이 생긴데 따라 마을이 형성되었으므로 역사가 아주 짧다. 현재 세승교차로와 세풍초등학교 사이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으며, 세승교차로 바로 우측 변에 마을회관이 자리하고 있다.

반면 내려(內閭)마을은 해창마을을 기준으로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안골에 있는 마을’을 의미한다. 

이 마을은 봉정마을 부근에 예부터 있었던 마을로 세풍초등학교 뒤쪽 일대를 의미한다.

주민들의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조선 선조 때 병사(兵使) 성윤문(成允文)이 이 마을에 살았는데 지금도 성병사(成兵使)가 살았던 집터에는 주춧돌이 가끔 나온다고 한다. 이곳을 흔히 ‘묵은 터’로 불리는데 현재는 밭으로 되어 있다.

마을 곳곳에서는 아주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기와가 출토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에는 상당히 부유한 마을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부흥마을 뒤에 금무비봉하무금((琴舞飛峯下舞琴) 터가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옛날 부부 둘만 살면서 거문고와 춤 놀이만을 하고 살았다고 하여 무금(舞琴) 터라 했으며, 상당히 부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연히 부자(富者)가 아니면 거문고와 춤 놀이를 할 수 없을 것이므로 이에 관한 추정이 상당히 근거가 있다고 보고 있으며, 이 당시 유래를 참고하여 현재 마을이름인 부흥(復興)을 부흥(富興)으로 바꾸는 것이 옳다고 마을주민들은 생각하고 있다. 

■세풍초등학교와 장영모 선생

부흥마을에는 장영모 선생 공적비가 있다. 장영모 선생은 세풍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개교 당시 초대교장을 역임한 교육자다. 

1965년 세풍초등학교를 건립하기 전에는 세풍지역 학생들이 거리가 먼 광양서초등학교까지 걸어서 통학해야하는 어려움을 겪었는데, 세풍초가 개교하게 되면서 세풍지역의 교육여건이 크게 개선됐다.

세풍주민들은 장영모 선생의 세풍초 개교에 헌신한 공로를 기리기 위한 공적비를 세우게 됐으며, 현재 장영모 선생 공적비는 세풍초등학교 교문을 들어서면 바로 오른편에 마련돼 있다.

세풍초등학교 바로 뒤에는 세풍보건진료소가 있다. 세풍보건진료소는 건물 노후화 정도가 심해 2011년 보건진료소를 새롭게 단장해서 마련됐다. 이로 인해 열악했던 농어촌 취약지역에서 주민들은 보다 좋은 여건으로 보건의료서비스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부흥마을 앞 세풍 뜰을 지나 여수방향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세풍 습지를 만나볼 수 있다. 세풍습지는 간척지 조성 당시 배수를 위해 조성한 늪지로 제방하구에 자연스럽게 기수지역이 형성돼 갈대숲이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겨울이면 찾아오는 철새 떼와 갈대숲이 장관을 이룬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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