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寄蓬來(기봉래) 

                                               양사언 소실

 

        사립문을 닫지 않고 머나먼 길 바라볼 때

        밤은 깊고 이슬 내려 나의 옷을 적시는데

        양산관 곱게 핀 꽃을 보시려고 안 오시나.

        悵望長途不掩扉    夜深風露濕羅衣

        창망장도불엄비    야심풍로습나의

        楊山舘裡花千樹    日日看花歸未歸

        양산관이화천수    일일간화귀미귀

여인의 매력은 질투심에서 비롯된다는 말이 있다. 

질투심이 있기에 여인이라는 말도 스스럼없이 한다. 어찌보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고금을 막론하고 여인은 사랑하는 임이 다른 여인에게 눈길을 주면 강한 불쾌감을 표출한다. 

이것이 심하면 가정 파탄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여인들은 자연스럽게 시문으로 통해서 표출하기도 했단다. 

양산관 깊숙하게 곱게 핀 갖은 꽃을 날마다 보시면서 돌아오질 않으시나요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사립문을 닫지 않고 머나먼 길 바라볼 뿐이라네(寄蓬來)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양사언 소실(楊士彦 小室)로만 알려질 뿐 생몰연대 등을 알 수 없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사립문 닫지 않고 머나먼 길 바라볼 때 / 밤은 깊고 이슬 내려 나의(羅衣)를 적십니다 // 양산관 깊숙하게 곱게 핀 갖은 꽃을 / 날마다 보시면서 지금껏 돌아오질 않으시나요]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봉래 서방님께 드림]로 번역된다. 봉래 양사언(蓬萊 楊士彦 1531~1586)이 당시 풍주부사(豊州府使)로 부임한 후, 부사는 관인 양산에서 머물며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으므로 그의 소실(첩)이 쓴 시로 알려진다. 여인이 사랑하는 임을 간곡하게 기다리는 애틋한 심사를 그려내고 있다.

 시인은 임을 기다리는데 그치지 않고 은근하게 여인심(女人心)이라는 질투가 묻어나는 시상을 만나게 된다. 시적 세계에선 다음과 같은 시상 그림이 그려진다. 

‘임이 꽃구경 하시느라 돌아 올줄 모르느냐’고 원망 하지만, 사실은 여기서 꽃이란 아름다운 다른 여인의 상징이리라. 곧 양산관 객사의 어느 기생에게 혹해서 안 오냐는 푸념이 섞어 나온다.

 화자는 가슴 속에 깊게 품고 있는 자신의 심회를 그대로 풀어내 보인다. 풍주부사가 쉬는 그 양산관에 깊숙하게 곱게 피어있는 갖은 꽃이란 다른 기녀들 틈에 가려서 날마다 그들을 보시면서 돌아오질 않으시나요라는 푸념이 그것이다. 여인이라면 그래도 자신만이라도 곱게 그려내고 싶은 충동감에 사로 잡혀 이마저 표현하고자 하는 깊은 심회의 시상 속의 상상으로 덧칠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머나 먼 길 바라보니 이슬내려 적신 나의, 곱게 핀 갖은 꽃 보며 돌아올 줄 모르시나요’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양사언 소실(楊士彦 小室:?∼?)로 여류시인으로만 알려질 뿐, 생몰연대와 그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다.

【한자와 어구】

悵望: 원망하여 바라보다. 長途: 머나 먼 길. 不掩扉: 사립문 닫지 않다. 夜深: 깊은 밤. 風露: 바람과 이슬. 濕: 적시다. 羅衣: 얇은 비단으로 지은 옷. // 楊山舘: 풍주 부사가 머물었던 공사관. 裡花: 깊숙하게 핀 꽃. 千樹: 많은 나무. 日日: 날마다. 看花: 꽃을 보다. 歸未歸: 돌아올 줄 모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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