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道中避雨(도중피우) 

                                                  가정 이곡

 

        큰 저택 한창 때는 느티나무 그늘 속

        높은 문에 자식위해 분명히 만들어서

        근년에 주인 바뀌어 비를 피한 행인이라.

        甲第當時蔭綠槐   高門應爲子孫開

        갑제당시음록괴   고문응위자손개

        年來易主無車馬   惟有行人避雨來

        연래역주무거마   유유행인피우래

권불십년이라고 했다. 하늘을 찌를 듯한 권세도 10년을 가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역사는 늘 그랬다. 임금의 자리는 천자의 자리와 같아서 평생 그 자리를 유지했지만, 신하의 권력은 승승장구라는 번영과 실패와 침몰이라는 유배를 반복하는 악순환을 거듭했다. 하늘은 맑은 날만 있는 것이 아니라 흐린 날도 있다고 했듯이 그랬다. 높은 문은 자손을 위해 만들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여 길가 던 행인들만이 비를 피한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근년에 주인이 바뀌니 수레출입도 끊겼구나(道中避雨)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가정(稼亭) 이곡(李穀:1298~1351)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거창한 저택 한창 때에는 푸른 느티나무 그늘을 드리웠고 / 높은 문턱은 자손들을 위해 만들었으리라 // 근년에 주인이 바뀌니 수레출입이 끊기더니만 / 이젠 길 가던 행인들만 비를 피하러 오는구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도중에서 비를 피하며]로 번역된다. 소화시평(小華詩評)에는 위 시문을 두고 다음과 같이 시평의 글이 전한다. ‘사람들이 가옥을 사치하게 크게 지어 후세를 위한 방도를 마련한 자는 이 시로써 경계를 삼을 수 있다’라고 하여 후대에 경계로 삼을 것을 가르쳐보려는 교훈적인 작품이이라고 보아야겠다. 이런 점이 시적인 배경을 되고 있다.

 시인은 이와 같은 점에 착안하여 거대한 저택과 저택의 높은 문이란 객관적 상관물을 끌어 들이고 있다. 거창한 저택 한창 때엔 푸른 느티나무 그늘을 드리웠고 높은 문은 그 자손을 위해 만들었으리라라고 하면서 이 모두는 모두가 한 갓 부질없는 짓이라는 자기 판단이란 가르침으로 시상을 일으킨다. 이렇게 보면 어쩌면 인간에게 재물이란 한갓 뜬 구름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시인은 과거지향적인 시심을 나타내더니만…

 화자의 입을 빌은 시인은 미래지향적인 내용을 시적인 얼게로 차곡차곡 짜낸다. 근년에 옛 주인이 바뀌니 대문 앞에 수레출입이 끊기니 겨울 길 가던 행인이 비를 피하러 올 뿐 아무도 찾지 않았다는 시공간적인 표현을 쓰고 있음이 특징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저택 한창 푸를 때는 높은 언덕 만들었고, 주인 바꿔 출입 끊겨 행인들만 비를 피해’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가정(稼亭) 이곡(李穀:1298~1351)으로 고려 말의 학자이다. 1317년(충숙왕 4) 거자과에 합격한 뒤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원나라에 들어가 1332년(충숙왕 복위1) 정동성 향시에 수석으로 선발되었고 전시에 차석으로 급제하였다. 이 때 지은 대책을 독권관이 보고 감탄했다 한다.

【한자와 어구】

甲第: 갑관(甲觀)으로 일류의 저택. 當時: 당시. 蔭綠: 녹음. 槐: 삼공의 자리. 高門: 높은 문. 應: 응당. 爲子孫: 자손을 위하여. 開: 열다. 만들다. // 年來: 근년. 최근. 易主: 주인이 바뀌다. 無車馬: 우마가 없다. 수레가 끊다. 惟: 오직 有行人: 길 가전 행인. 避雨: 비를 피하다. 來: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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