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飮酒(음주) 

                                              포은 정몽주

 

        봄바람 흥이 나서 술잔을 기우리고

        황금을 다 썼다고 부끄러워 마시게

        새로운 비단 주머니 가득하지 않는가.

        客路春風發興狂    每逢佳處卽傾觴

        객로춘풍발흥광    매봉가처즉경상

        還家莫愧黃金盡    剩得新詩滿錦囊

        환가막괴황금진    잉득신시만금낭

선현들을 시와 술을 같은 맥락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술 한 잔하면서 시를 음영했고. 깊은 사색에 빠지기도 했다. 그래서 기봉(岐峯) 백광홍(白光弘) 같은 시인은 ‘시주전(詩酒戰)’까지도 주저하지 않고 장문의 시를 썼을 정도였으니 더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고려말의 대학자 또한 예외는 아니었을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봄바람에 흥이 겨워 술잔을 기울면서 빈 주머니가 텅 비었지만, 시 주머니에 가득 찬 것이 성과였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새로운 시를 지어 비단 주머니에 가득하니(飮酒)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봄바람 나그네 길에 미친 듯이 흥은 일어나고 / 경치 좋은 곳 만날 때마다 술잔을 기울이네 // 집에 돌아와 주머니에 든 황금을 다 썼다고 부끄러워하지 말게 / 새로운 시를 지어 비단 주머니에 가득하니까]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술을 마시며]로 번역된다. 술을 마시면서 쓴 시가 유독 많지만 시가 황금보다 귀중하다는 내용을 담았던 시를 많이 보지 못했다. 한 잔 술을 마시고 나면 천하를 얻은 듯 기분이 상쾌했던 것은 예나 이제나 마찬 가지였던 모양이다. 고려 말의 대학자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한잔 술을 마시고 나서 비단 주머니에 시가 가득하다고 느낀 데서 시적 배경이 되고 있다.

 비단 주머니에 가득찬 시주머니에 취한 감정은 최고조에 달했겠다. 한들거려 부는 봄바람에 나그네 발길은 미친 듯이 흥이 일었을 정도였으니 천하들 얻은 듯 했겠다. 그런데 경치 좋은 곳 만날 때마다 술잔을 기울이며 흥에 겨웠으니 그 시적 감흥이 어떠했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거나하게 취한 기분을 만끽한 화자의 입을 빌은 시인은 집에 돌아와 황금을 다 썼다고 부끄러워 말자는 자문자답식의 말을 주고 받으면서 스스로를 위안하게 된다. 한 잔 술을 마신 김에 새로운 시를 지어 간직할 수 있는 비단 주머니에 시가 가득했었다는 시상을 일으키고 있다. 시인만이 표현할 수 있는 멋진 시적인 착상이라 하겠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봄바람에 흥은 일고 경치 좋아 술잔 드네, 돈이 없다 부끄러워말게 비단 주머니엔 시만 가득’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로 고려 말의 문신, 학자이다. 과거의 삼장(초장·중장·종장)에서 연이어 장원을 차지하여 이름을 떨치고, 당대 최고의 학자 이색의 문하에서 정도전 등과 수학했다. 1362년 예문관 검열로 관직에 첫발을 내디뎠고, 이후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한자와 어구】

客路: 나그네 길. 春風: 봄 바람. 發興狂: 미친 듯이 흥이 일다. 每逢: 매번 만나다. 佳處: 경치좋은 곳. 卽: 그 때마다. 傾觴: 술 잔을 기울다. // 還家: 잡에 돌아오다. 莫愧: 부끄러워 말다. 黃金盡: 돈을 다 쓰다. 剩得: 남아서 얻다. 新詩: 새로 지은 시. 滿: 가득하다. 錦囊: 돈 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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