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過月溪坂(과월계판)

                                             척약재 김구용

 

        달처럼 굽은 계곡 월계라는 이름인데

        오솔길 굽이굽이 산기슭에 이어지고

        종종종 걸음걸이가 시원스레 맑아라.

        溪形如月曲    恐得月溪名

        계형여월곡    공득월계명

        細路沿山腹    行行可爽淸

        세로연산복    행행가상청 

명기 황진이는 반달을 얼레빗으로 보는 시상을 일으켰다. 얼레빗을 머리에 꽂아 보고 만지기도 했으리니. 임이 보아주지도 않는 얼레빗의 의미가 없다고 하면서 결국 허공에 던지는 상상력을 발휘한다. 시인은 계곡을 지나며 달처럼 굽은 모양을 상상했다. 달처럼 굽었다고 해서 월계(月溪)라는 이름이 생겼는가를 물어보면서 오솔길 산기슭으로 이어졌다고 상상한다. 오솔길은 산기슭으로 이어져 있고 종종 걸음으로 계곡을 걸으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산기슭 종종 걷는 걸음걸이 시원하고 맑아라(過月溪坂)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척약재(惕若齋) 김구용(金九容:1338~1384)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계곡의 모양은 반달 처럼 굽어 있고 / 그래서 월계(月溪)라는 이름을 얻지는 않았을까 // 오솔길은 산기슭으로 반듯하게 이어져 있으니 / 종종 걷는 걸음걸이가 그저 시원하고 맑기만 해라]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월계비탈을 지나며]로 번역된다. 사물이나 자연의 이름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모양이다. 달을 보고 얼레빗을 생각했다거나, 월계라는 이름을 보고 달을 생각하는 등이 착상들이 그러한 시상이다. 굽은 계곡의 모양이 달처럼 굽어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이런 감정과 상상이 결국은 월계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것이 시적인 배경이 되고 있다.

 시인은 조그마한 사물과 그 이름도 그냥 보아 넘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비탈진 계곡의 모양을 보고 달처럼 굽어 있다고 해서 [월계月溪]라는 이름을 얻지는 않았을까라는 의문점을 갖는데서 시적인 상상력이다. 같은 이의동음어인 [월계月桂]도 라는 이름도 상상하기에 따라 마찬 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을 갖을 수는 있겠다.

 화자는 이 월계를 걷는 것이 달나라에나 오는 것처럼 맑고 시원했을 것이다. 그래서 오솔길은 산기슭으로 계속 이어져 있다고 했다. 종종 걸음으로 걷는 걸음걸이는 마냥 맑고 시원했을 것임에는 분명했을 것이다. 작은 사물과 이름도 그냥 스치지 않고 예리한 관찰력은 시를 쓰는 큰 요소가 되고 있음은 가리킨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반달처럼 굽은 계곡 월계라고 이름했나, 오솔길은 반듯한데 걸음걸이는 시원하고’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김구용(金九容:1338~1384)으로 고려 후기의 문인이자 학자다. 다른 호는  육우당(六友堂)으로 알려진다. 충열공 김방경의 손자이고, 상락군 김묘의 아들이다. 정몽주, 이숭인 등과 더불어 성리학을 일으켰고, 척불숭유의 선봉이 되었으며, 사장(詞章)을 잘하였다 한다.

【한자와 어구】

溪形: 계곡의 모양. 如月: 달과 같다. 曲: 급다. 恐得: 생각건대 얻은 것 같다. 생각하기에 그런 것 같다. 月溪名: [월계]라는 이름. // 細路: 오솔길. 沿: 이어지다. 山腹: 산기슭. 산 중앙. 行行: 종종 걷는 걸음걸이. 可: 가히 ~하는 것 같다. 爽淸: 시원하고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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