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小柏舟(소백주) 

                                                          황진이

        곱게도 떠다니던 영화로운 작은 배가

        강기슭에 매달려서 오늘도 쓸쓸해라

        문무를 겸비한 만호 제일 먼저 타셨는가.

        汎彼中流小柏舟    幾年閒繫碧波頭

        범피중류소백주    기년한계백파두

        後人若問誰先渡    文武兼全萬戶候

        후인약문수선도    문무겸전만호후

­­‘너도 내 나이 되어 봐라’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고 넘기는 수가 많다. 늙어봐야 말의 깊은 속내를 안다는 뜻일게다. 흔히 인생무상이란 말을 쓴다. 덧없는 청춘이 흘러 남는 건 허무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시적 감흥과 비유법의 착상이 기막힌 여류시인 한 분을 만나게 된다. 잣나무로 만든 배를 시적 비유의 대상물로 설정하여 한 인간의 영화를 떠올리면서 지금은 그 때를 상상하며 조용히 물러앉아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몇 년을 한가로이 푸른 물결 곁에 매여 있는가(小柏舟)로 의역해 보는 칠언절구다. 작가는 명월(明月) 황진이(黃眞伊)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저 강물 한가운데를 떠다니던 작은 잣나무배 / 몇 년을 한가로이 푸른 물결 곁에 매여 있는가 // 뒤에 오는 사람이 만약 묻기를 ‘누가 제일 먼저 건넜소’라고 말한다면 / 그 사람은 문무를 겸비한 만호후셨겠지]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잣나무로 만든 작은 배]로 번역된다. 작은 잣나무 배가 하나 있었다. 강물 한가운데를 곱게도 떠다니며 화려한 한 때를 지냈다. 그러나 세월이 흘려 어느덧 낡아 지금은 강가 기슭에 잊혀진 채 매여 있다. 시적 화자이기도 한 아리따운 여인이 있어, 그녀는 시도 잘 짓고 글씨도 능했으며 노래와 춤은 물론 용모도 출중했던 여걸이다. 그 용모에 반하여 이름 있는 한다한 사내들이 죄다 모여들었던 과거지향적인 회상이 시적 배경이 된다.

 가는 세월은 시인을 놓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창밖에는 한 잎 두 잎 낙엽이 지기 시작하여 다투어 찾아오던 발길도 뚝 끊겨 멀어져만 갔다. 황혼의 기로에서 시인은 더는 여왕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때 문득 떠오는 인물이 있었다. 그 얼굴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화자의 가슴을 물씬 적시며 따스하게 다가선 그 사람은 첫사랑이었으리라. 분명 문무를 겸비한 만호후(만호를 다스리는 제후. 높은 지위)였다. 시적 화자가 관조하는 상태에서 바라보는 작은 배의 추억은 바로 시인 자신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분명 영화를 누렸던 퇴기(退妓)였음이 분명하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저 강물의 잣나무 배 푸른 물결 곁에 매여, 제일 먼저 누가 건너 문무 겸한 만호후였겠지’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황진이(黃眞伊:?∼?)로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이다. 중종 때 개성 출신의 명기로서, 중종(1506∼1544) 초엽에 태어나 명종(1545∼1567) 시대를 무대로 활약했던 명기다. 송도 양반 황진사의 서녀로 출생하였으며, 용모가 아름답고 거문고·노래·시예에 뛰어난 재주를 가졌다 한다.

【한자와 어구】

汎: 떠다니다. 彼中: 저 강물 한 가운데. 流: 흐르다. 小柏舟: 잣나무 배. 幾年: 몇 년. 閒: 한가로이. 繫: 매여 있다. 碧波頭: 푸른 파도 머리. // 後人: 후인. 若問: 만약 묻다. 誰先渡: 누가 먼저 건너다. 文武: 문과 무. 兼全: 온전히 겸하다. 萬戶候: 만호후. 곧 높은 벼슬을 했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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