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村居(촌거) 

                                                도은 이숭인

        단풍잎이 환하게 시골길을 밝혀주며

        맑은 샘 바위틈에 소리 내어 흐르고

        사람은 가지 않으나 산기운에 황혼지네.

        赤葉明村途    淸泉漱石根

        적엽명촌도    청천수석근

        地偏車馬少    山氣自黃昏

        지편거마소    산기자황혼

요즈음도 마찬가지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골에 고향을 두고 있었다. 시골에 살다보면 도시의 정경에서 느끼지 못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곤 한다. 물안개 피어나는 모습이랄지, 해가 서산마루에 걸려 있을 즈음 한 점 구름이 은근슬쩍 스쳐가 가난한 모습 등 모두가 새롭다. 봄물이 해집고 움을 트기도 전에 오롯이 흐르는 물소리는 또 다른 세계에 오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시골의 정경을 담아 알뜰한 고향의 정취가 묻어나게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산 기운만은 저절로 황혼을 물들어 져가네(村居)로 번역해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1347~1392)은 알려진 고려 말의 절신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단풍잎이 시골길을 환하게 밝혀 주고 / 맑은 샘물 바위틈에서 졸졸졸 흘러가네 // 산간벽지라 오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지만 / 산 기운만은 저절로 황혼에 물들어 져가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시골에 살면서]로 번역된다. 지금의 도농(都農)의 차이는 상당히 크지만, 당시의 차이가 얼마나 있었겠는가마는 수도 개성의 번화한 거리와 시골의 풍경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요즈음 귀농하는 사람이 부쩍 늘어난 추세다. 시인이 시골에 살면서 자연을 보고 생각하고 느꼈던 심회를 여과 없는 시심으로 옮겨 놓은 것이 시적인 배경이 되고 있다.

 시인이 살았던 시골은 산골이었음을 짐작한다. 산골의 풍광을 빠짐없이 그림으로는 그릴 수 없어서 시문으로 그려놓았다. 단풍잎이 한적한 시골길을 환하게 밝혀 주고 있는 밑그림을 그리더니만 맑은 샘물 바위틈을 졸졸졸 흘러감을 수채화가 아닌 시문으로 그려낸 것이다. 위 두 가지 밑그림이면 충분하지 더 다른 산골의 풍경일랑 더는 필요 없을 것 같다.

 화자는 인적이 드문 산촌의 특징을 끌어내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산간벽지이기 때문에 오가는 인적은 거의 없었을 것이고, 오직 멀리 산 기운만 저절로 황혼으로 물었다는 시심이다. 도시와 한적한 시골의 풍광은 아무렴해도 오가는 인적이 드물다는 표현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단풍잎이 길 밝히고 맑은 샘물 흘러가네, 산간 벽지 사람 없고 황혼 속에 물이 들고’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1347~1392)으로 고려 말, 조선 초의 학자이다. 사대부 출신으로서 경산부 사람이다. 원나라 서울에서 실시하는 과거에 응시할 고려 문사를 선발하였을 때 장원으로 뽑혔으나 나이가 25세 미만이어서 원나라에 가지는 못했다. 고려 삼은의 한 사람이다.

【한자와 어구】

赤葉: 붉은 단풍잎. 明: 밝혀주다. 村途: 시골의 길. 淸泉: 맑은 샘물. 漱: 싯다. 石根: 돌부리 // 地偏: 벽지. 오지. 車馬: 거마, 차와 말(옛날에는 중요한 교통수단이었음). 少: 적다. 많지 않다. 山氣: 산 기운. 自: 저절로. 스스로. 黃昏: 황혼. 해가 질 무렵. 해가 서산에 기우는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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