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秋日(추일)

                                 매헌 권우

대나무 그림자 책상 밑에 스며들고

 

국화 향 나느네 옷의 깃에 가득해라

지는 잎 기세 일으켜 비바람에 날리네.

竹分翠影侵書榻 菊送淸香滿客衣

죽분취영침서탑 국송청향만객의

落葉亦能生氣勢 一庭風雨自飛飛

낙엽역능생기세 일정풍우자비비

우람한 대나무 숲 튼튼한 어미 발밑 뿌리를 뚫고 쏘옥 내민 대나 무 순은 귀엽고 깜직하다.

어찌도 그리 철없는 자태를 그리면서 뽐내 고 있을까? 어미의 그늘 속에서 포 근히 잠자고 있고, 어미의 구성진 노래 소리를 듣고 춤추면서 자란다.

그래서 사철 푸른 기상을 자랑 하는가 하면 곧고 곧은 절개를 대 나무에 비유했다. 장대처럼 자란 대나무 그림자가 선비의 책상 밑으 로 은근슬쩍 기어들면서 잎의 기세 가 비바람을 일으킨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맑은 향기 보낸 국화, 나그네 옷 에 가득해라(秋日)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송소(松巢) 권우(權遇:1363˜1419)다.

위 원 문을 번역하면 [대나무는 푸른 그 림자 나눠 책상 밑으로 슬며시 스 며들고 / 국화는 맑은 향기 널리 보 내 나그네 옷에 가득해라 // 지는 잎도 또한 능히 활기찬 기세를 일 으키고 있나니 / 뜰 가득 비바람에 절로 날려 가누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어느 가을날]로 번역 된다. 사계절을 두고 쓴 시문 중에 서 봄의 내음이 향기로움을 두고 쓴 시문이 가장 많은데 이어 가을 을 두고 쓴 시문은 그 다음이다.

그 만큼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기 때문 이겠다. 어느 가을날 국향의 그윽 함에 시상을 일으키면서 뜰에 가득 하게 비바람이 절로 날리는 모습을 보는 것이 시적 배경이 되고 있다. 시인은 따스한 가을 햇볕도 그냥 두지는 못했던 모 양이다.

가을바람 에 흔들거리는 대 나무의 푸른 그림 자도 이리저리 나 누면서 책상 밑으 로 살며시 스며들 고 있다는 점을 그냥 두지 못해 사상을 일으킨다.

이럴 즈음에 시인 은 국화가 맑은 향기 널리 보낸다 고 하면서 그 향기가 나그네 옷에 가득했다고 했다는 시상에 젖어 들 고 만다.

작은 자연의 속삭임도 그 냥 두지 못해 큰 시심을 일이키고 있음을 본다. 화자는 시인이 보았던 시상에 이어 전이적인 생각을 노정하지 아 니할 수 없었다.

가을을 재촉하는 한 줌 바람에 지는 잎도 또한 능히 기세를 일으키고 있다고 하면서 뜰 가득한 비바람에 절로 날려 가는 사상 앞에 서 본다.

가을이 깊어 감 을 소소한 비바람에서 느낀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 은, ‘책상 밑에 스민 그림자 국향이 옷에 가득, 활기찬 기세 일으키니 비바람에 절로 날려’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 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매헌(梅軒) 권우(權 遇:1363˜1419)로 고려 말, 조선 초의 학자이다. 정몽주 문하에 들 어가 수학하였다. 1377년(우왕 3) 진사가 되고, 1385년 문과에 급제 해 문첩녹사가 되고 성균관박사, 밀직당, 장흥고사, 군기주부 등을 역임하였다.

1390년(창왕 2)엔 액 정알자감와 예조좌랑이 지냈다.

【한자와 어구】 竹: 대나무. 分翠影: 푸른 그림자 를 나누다. 侵: 스미다. 침범하다. 書榻: 책상 밑. 菊: 국화. 送淸香: 맑은 향기를 보내다. 滿客衣: (맑은 향기가) 나그네 옷에 가득하다. // 落葉: 낙엽. 지는 잎. 亦: 또한. 生 氣勢: 기세를 일으키다. 一庭: 뜰 가득. 風雨: 바람과 비. 自飛飛: 저 절로 날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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