睡起(수기)
사가정 서거정
주렴의 그림자가 깊숙하게 돌아들고
연 향기 끊임없이 풍겨오는 베게머리
잠에서 꿈을 깨보니 빗소리가 들려오네.
簾影深深轉 荷香續續來
렴영심심전 하향속속래
夢回高枕上 桐葉雨聲催
몽회고침상 동엽우성최
이따금 깊은 잠에 취하는 수가 많다. 의식을 구분할 수 없을 만큼 곤한 잠에 취한다. 마치 죽었다가 깨어나는 착각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선현들이 썼던 소설의 소재 중에 몽자류 작품이 많았던 것도 이런 면에서 다소 이해할 수도 있 을 것 같다.
머리를 조이라고 잠깐 눈을 붙이는 시간이 불과 얼마 되 지 않지만 꿈속의 기간과 과정은 몇 백년을 설정하는 수가 많다.
베 게머리에서 곤하게 취한 잠에서 부 스스 꿈을 깨보니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오동나무 잎에서 빗소리만 거세 게 부는구나(睡起)로 번역해본 오 언절구다.
작가는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주렴의 그림자가 깊숙이 돌아서 들어오고 / 연꽃 향기가 끊임없이 풍겨오는 구나 // 베게머리를 마주하고 곤하 게 취한 잠에서 부스스 꿈을 깨보 니 / 오동나무 잎에서 빗소리만 거 세게 불어오는구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잠에서 깨어나니]로 번역된다. 대부분 사람들의 하루 피로는 잠으로 푼다. 깊은 숙면(熟 眠)은 피로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 는 것 같다.
몸과 마음이 피로하면 꿈도 꾸지 않고 숙면하지만, 깊은 잠을 자지 못해 뒤숭숭한 꿈을 꾸 는 경우도 있다.
깊은 잠에서 자고 일어나 주위를 보면 상쾌함과 함께 자연 주는 풍광이 반겨주는 듯 느껴 지지만, 열어젖힌 하루가 그렇지 못 한 경우도 있다.
이런 점이 시적 배경이 되고 있다. 어느 날 아침 시인의 수기(睡 起)는 화창한 하 루와 함께 자연을 온 품에 안은 채 열었던 모양이다.
창문을 바라보니 주렴의 그림자가 깊숙이 돌아서 어 느 틈을 비집어 뚫고 들어오고 연 꽃 향기가 끊임없이 풍겨오고 있다 는 시상을 일으켰다.
연꽃이 피는 계절이면 어디에서든 풍겨오는 향 이련만 유독 아침 향은 더욱 진했 던 모양이다.
화자는 베게머리에서 취했던 잠 에서 단 꿈을 깨고 보니 오동나무 잎에서 빗소리만 거세게 불어오는 구나 라는 선경후정(先景後情)을 함께 일구어내는 시상이다.
자연이 주는 선물을 자연에 다시 되돌려 주려는 화자의 깊은 뜻이 보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 은, ‘깊숙한 주렴 그림자 연꽃 향기 풍겨오고, 곤한 잠에 꿈을 깨니 빗 소리만 거세게 불고’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 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사가정(四佳亭) 서거정 (徐居正:1420˜1488)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 학자이다. 다른 호는 정정정(亭亭亭)이라 쓰기도 했다.
증조부는 호조전서 서의이고, 아버 지는 목사 서미성이다. 어머니는 권근의 딸이고 최항이 그의 자형으 로 알려진다. 조수, 유방선 문하에 서 수학했다.
【한자와 어구】 簾: 주렴. 발. 影: 그림자. 深深: 깊숙하게. 매우 깊다. 轉: 돌다. 구 르다. 荷香: 연꽃 향기. 續續: 끊임 없이. 계속해서. 來: (향을) 풍긴다. // 夢回: 꿈에서 깨다. 꿈을 깨보니. 高枕上: 높은 베게머리. 桐葉: 오 동나마 잎. 雨聲: 빗소리. 비가 오 는 소리. 催: 재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