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稷粥稷粥(직죽직죽)[1]

                               제호 양경우

 

지난해 추수 못해 백성들 굶주리고

조밥 꽃 쌀밥 꽃 먹지도 못 하는데

하물며 푸성귀 없는데 피죽인들 있으리.

煎稷作粥也不惡 去年失秋民苦飢

전직작죽야부악 거년실추민고기

茹草不辭況稷粥 粟飯花稻飯花喫不得

여초부사황직죽 속반화도반화끽부득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사회는 많 은 변화를 가져온다. 사회적인 변 화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변화의 몸 부림도 여러 곳에서 찾아본다. 평민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다가 들숨일망정 내쉬는 안타까운 모습도 본다. 잠자고 있던 훈민정음에 대한 시각이 달라지면서 판소리 마 당을 비롯해서 한글문학도 큰 숨을 들이 쉰다. 그렇지만 관원들의 수 탈은 더 심했다. 푸성귀도 없는데 하물며 피죽인들 있으랴. 조밥꽃 쌀밥꽃 먹지도 못하는데 라고 읊었 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푸성귀도 없는데 하물며 피죽인 들 있으랴(稷粥稷粥1)로 번역해본 율(律)의 전구인 7˜9언 배율이다. 작가는 제호(霽湖) 양경우(梁慶 遇:1568˜?)로 의병장이다. 위 한 시 원문을 의역하면 [피 끓여 죽 쑤 어도 나쁘지 않거늘 / 지난해 추수도 못해 백성들은 굶주림에 허덕인 다 // 푸성귀도 없는데 하물며 피죽 인들 있으랴만 / 조밥꽃 쌀밥꽃 먹지도 못한 백성인데]라는 시심이 다.

위 시 제목은 [피죽! 피죽인들] 로 번역된다. 일종의 변격인 배율 (排律)인 시문이다. [1]과 [2]로 각각 4행씩 나누었고 마지막 행은 결론이겠다. 피는 벼 사이에 난 잡 초와 같은 잎은 벼의 잎과 비슷하 지만 잎혀[葉舌]와 잎귀[葉耳]가 없어 구별된다. 열매가 맺힌 이삭 은 조와 비슷하지만 조보다 좀 엉 성하고 암황갈색 을 띤다. 이 열매 로 죽을 쓰는 것 이 ‘피죽’인데 이 것마져도 먹지 못 했던 시대적 상황 이 시적 배경이 된다.

시인은 피 끓여 죽 쑤어도 나쁘지 않은 상황인데 지 난해 추수 못해 백성들은 이것도 먹지 못해 굶주린 다고 한탄했다. 심한 가뭄이 원인이었겠지만 고을 아전들의 심한 수탈이었음으로 이 어지는 후구에서 그 뜻을 알게 된 다. 그래서 백성의 굶주림의 원인 이었다는 시상이다.

화자는 ‘푸성귀도 없는데 하물며 피죽인들 있으랴’라고 한탄하면서 심지어는 조밥꽃 쌀밥꽃까지 먹지 도 못하는 어려운 상황임을 시상으 로 전개하고 있다. 후구는 [피죽이 라 외쳐본들 무슨 이익이 되리오 / 고을 아전들 장부책 손에 들고 와 서 // 거두는 세금은 종류도 많구나 / 아! 피죽으로 주린 배도 채우지 못하거늘]로 이어진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 은, ‘피죽 끓여 좋거니와 굶은 백성 허덕이고, 피죽인들 있으랴만 먹지 못한 조밥 쌀밥’이라는 시인의 상 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 을 유추한다.

작가는 제호(霽湖) 양경우(梁慶 遇:1568˜?)로 조선 중기의 문신 이자 의병이다. 다른 호는 점역재 (點易齋), 요정(寥汀), 태암(泰巖) 으로 알려진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아버지 양대박이 창의 하자, 아우 양형우와 함께 보필하 였다. 아버지의 명에 따라 고경명 에게 가서 기무를 맡았다.

【한자와 어구】 煎稷: 피를 끓이다. 作粥也: 죽 을 쑤다. 不惡: 나쁘지 않다. 去年: 거년, 지난 해. 失秋: 추수를 못해. 民苦飢: 백성들이 굶주린다. // 茹 草: 푸성귀. 不辭: 없다, 사양하다. 況稷粥: 하물며 피죽인들. 어찌 피 죽이랴. 粟飯花: 조밥꽃. 稻飯花: 쌀밥꽃. 喫不得: 하물며 (지금은) 먹지도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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