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금마을은 금련촌 안쪽에 위치한 마을로 내동이라고도 부른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마을전경, 마을회관, 당산나무, 마을앞 매화나무, 우산각, 표지석 순이다.
내금마을은 금련촌 안쪽에 위치한 마을로 내동이라고도 부른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마을전경, 마을회관, 당산나무, 마을앞 매화나무, 우산각, 표지석 순이다.

내금마을은 옥곡면과 진상면 경계에 있는 밤골재를 우회하는 고갯길을 뒤로하고 그 아래쪽에 자리한 마을이다. 

밤골재 경사면이 병풍을 치듯 감싸는 모습이 특징이다. 위치상으로는 진상면 외금마을과 상금마을 사이에 있으면서도 밤골재를 통하면 옥곡면과도 맞닿아 있다. 

■금련촌 안쪽에 위치한 마을

내금마을은 본래 광양현 동면(東面) 진상리(津上里)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진상면에 속했고, 1789년경 호구총수에는 광양현 금련촌(錦蓮村)지역이었다. 

1912년(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 왜정시대 행정구역 개편 이전에는 광양군 진상면 내금리(內錦里)라 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당시 외금리(外錦里), 상이리(上梨里), 하이리(下梨里), 장기리(場基里)와 함께 병합하면서 금이리(錦梨里)에 속했다.

내금마을은 1580년경 진주정씨(晋州鄭氏)가 처음 입촌해 마을을 형성했다고 전하며 현재도 진주정씨가 마을에 많이 살고 있다.

금련촌(錦蓮村)의 유래는 옥곡면과 진상면 경계에 있는 세 개의 산등성이가 남쪽으로 내리뻗으면서 ‘삼발등’ 형국을 하는데, 진월면 장재마을 지역에 위치한 옥녀봉(玉女峰)의 옥녀가 이를 보고 이 지역이 마치 하얀 연꽃 3개가 주렁주렁 달린 모습이라 하여 비단을 짜고 있다는 의미의 금련촌(錦蓮村)으로 이름했다고 전한다. 

마을지명을 두 글자로 제한하는 당시 방침에 따라 1872년 광양현지도에 금촌(錦村)으로 했다가 이 마을과 바로 인접해 있는 옥곡 금촌(錦村)과 구별하기 위해 가장 안쪽에 위치한 마을이란 의미로 내금(內錦)이라 했으며 내동(內洞)이라고도 부른다.

■효부상

내금마을은 옥곡면과 진상면을 잇는 굽이굽이 고갯길 정상부에 마을을 알리는 표지석이 놓여 있다. 

고갯길에서 곧바로 마을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조성되어 있지만 경사도가 상당해 상금마을에서 들어오는 길이 주로 이용된다.

상금마을에서 내금마을로 바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서면 마을의 당산나무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이 당산나무는 느티나무로 수령이 140년 나무 둘레가 2.2m, 나무 높이가 8m로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됐다. 

해마다 이곳에서 마을의 강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냈다고 한다.

당산나무 바로 아래에는 마을주민들이 쉴 수 있는 우산각이 마련돼 있으며, 그 안쪽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마을회관이 나온다. 

마을회관은 1993년 준공된 것으로 2층 건물로 형성돼 있다.

마을주민들은 마을 뒤 산등을 까막등이라고도 하는데, 옛날에 물난리가 났을 때 마을은 물론 산 전체가 물에 잠기고 이 지역에 까마귀 한 마리 앉을 정도의 땅만 남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또 이 마을에는 효부상을 수상한 이들이 많이 있다. 

1910년생인 정상호는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해 아버지가 위급하자 단지주혈(斷指注血)을 하는 등 지극정성으로 돌봐 광양향교 효부상을 수상했으며, 1930년생인 서세남, 황봉애도 시부모에 대한 극진한 효도로 1966년과 1958년에 각각 효부상을 수상했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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