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長霖(장림) 

                                            취연 일타홍

        열흘의 긴 장마 고향 꿈 끝이 없네

        눈앞에 고향의 길 멀고 먼 천리 길

        근심에 난간에 기대 헤아리는 고향을.

        十日長霖若未晴    鄕愁蠟蠟夢魂驚

        십일장림약미청    향수납납몽혼경

        中山在眼如千里    堞然危欄默數程

        중산재안여천리    첩연위란묵수정

수구지심(首邱之心)이라고 했던가. 귀소성(歸巢性)이라고 했던가. 사람은 나이 들면 먼 추억을 생각하거나 아련한 고향을 그린다. 고향은 아무렴해도 가고 싶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많다. 개경의 옛터를 바라보며 [어즈버 태평연월일 꿈이런가 하노라]라는 시절가를 불렀던 시절이 있었다면 감상적인 생각을 작지만은 않으리라. 고향은 내 눈 앞에 있으나 길만은 먼 천리길인데 고향 가고 픈 근심에 어려 난간에 기대어 헤아리네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고향은 눈앞에 있으나 갈 길은 먼 천리라네(長霖)로 번역되는 칠언절구다. 작가는 취연(翠蓮) 일타홍(一朶紅)으로 여류시인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열흘이나 긴 이 장마 왜 아니 개는 걸까? / 고향을 오고 갔던 꿈은 그 끝이 보이지 않다네 // 고향은 내 눈 앞에 있으나 길만은 먼 천리길인데 / 고향 가고 픈 근심에 어려 난간에 기대어 헤아리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긴 장마 동안에]로 번역된다. 장마가 들면 상쾌하지 못해 기분도 ‘찌뿌둥’해 진다. 옷가지며 심지어는 잠자리까지도 불편하다. 그 뿐만이 아니라 나들이도 마찬가지다. 비옷이나 우산이 없던 시절엔 우장(雨裝)을 입고 다녔을 것이니 지금보다 훨씬 더 불편했으리. 온갖 식물이나 곡식은 동화작용을 하지 못해 꽃과 열매를 맺는데 크게 지장을 준다. 이런 점에 착상했던 시상이겠다.

 시인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서 시상을 일으켰을 것이다. 열흘 동안이나 긴 장마가 왜 아니 갤까? 라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고향을 오고 갔던 꿈 그 끝이 없었다는 시상을 이끌어 냈다. 나들이의 불편함을 그대로 말해 주고 있다. 시상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쉬운 상황에서 이끌어 낸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위와 같은 시상에 따라 저 멀리 보일 것 같은 고향이 지척임을 상기시킨다. 고향은 내 눈 앞에 있으나 장마 때문에 갈 길만은 먼 천리 길이고, 고향에 가고 싶은 근심에 어려 난간에 기대어 헤아려본다고 했다. 긴 장마동안 고향에 가고 싶은 간절한 욕망을 사로잡힌 짤막한 시상을 떠올렸으리.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열흘 걸린 긴 장마에 고향 꿈은 끝이 없고, 눈 앞 고향 먼 천리 길 근심 어려 난간 기대네’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일타홍(一朶紅:?∼?)으로 여류시인이다. 금산 기생으로 심희수와 얽힌 사랑 이야기로 잘 알려진다. 여자가 지켜야할 지조는 물론 비록 첩이였다 할지라도 남편을 위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 판단하고 자결했던 인물이다. 그렇지만 생몰연대와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다.

【한자와 어구】

十日: 얄흘. 長霖: 긴 장마. 若未晴: 날씨가 맑지 못하다. 鄕愁: 향수. 고향생각. 蠟蠟: 끝없다. 夢魂驚: 꿈에 놀라다. // 中山: 중산. 고향의 지명으로 보임. 在眼: 눈 앞에 있다. 如千里: 천리와 같다. 堞然: 고향 가고픈 그러한 생각. 危欄: 난간에 기대다. 默: 말없이. 數程: 갈 길을 헤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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