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암마을은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글을 잘 아는 지식인과 돌이 많음을 뜻한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마을전경, 임시주차장, 마을회관, 마을 앞 계곡, 우산각, 표지석 순이다.
부암마을은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글을 잘 아는 지식인과 돌이 많음을 뜻한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마을전경, 임시주차장, 마을회관, 마을 앞 계곡, 우산각, 표지석 순이다.

부암마을은 봉강 조령리에 속해 하조마을 아래 부근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 정면으로는 형제의병장 묘역 및 쌍의사가 있는 신촌마을이 봉강계곡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글을 많이 아는 지식인의 마을

부암마을은 본래 광양현 북면(北面) 며내리(旀內里)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이후에는 며내면(旀內面)에 속했고, 1872년 광양현 지도에 의하면 며내면 묵방리(墨方里)지역이었다.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 왜정시대 행정구역 개편 이전에는 봉강면 부암리(傅岩里)라 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후에는 주변 여러 마을(里)과 병합하면서 조령리(鳥嶺里)에 속했다. 조령리(鳥嶺里)라는 이름은 전국에 여럿 존재하는데 새가 넘나들 수 있는 험한 고개라는 뜻을 갖고 있어 옛날 이곳 지대가 험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부암마을은 1756년경 송창국(宋昌國)이란 사람이 처음 이곳에 정착해 마을을 형성했다고 전하며, 마을은 조령리의 중심지가 되어 예부터 묵방(墨方)지역에 속했고, 그 중 ‘아랫먹방’또는 ‘아랫묵방’이라 불리었다. 부암 마을 위쪽에 위치한 필동마을이 ‘웃먹방’에 해당한다.

부암(傅岩)마을이란 이름은 이 일대에 글을 많이 아는 지식인이 살고 있다는 의미에서 묵방(墨方)이라 불렸는데, 마을 이름으로 사용하기에는 고상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1902년 송식(宋植)이란 사람이 ‘스승 부(傅)’자와 ‘바위 암(岩)’자를 사용해 부암(傅岩)으로 개칭했다고 한다. 

여기서 부(傅)자는 먹방스승이 공부하는 방(房)을 의미하며, 암(岩)자는 마을 앞에 바위가 많음을 참고해 이름 한 것이라 전한다.

■화재없는 마을

부암마을은 여름 피서지로 각광받는 봉강계곡을 정면에 두고 있다. 

마을 앞 버스정류소 위쪽으로 피서객들을 위한 임시주차장이 조성되어 있고, 마을 주민들이 쉴 수 있는 우산각도 시원한 계곡을 감상할 수 있도록 계곡 앞에 마련돼 있다. 부암이라는 이름에 맞게 마을 앞 계곡은 크고 넓은 바위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고 있다.

마을회관은 마을길을 따라 조금만 오르면 나오는데, 회관 입구에는 ‘화재 없는 안전마을’ 현판이 걸려있다. 

광양소방서가 주택화재 저감을 위해 원거리에 위치한 오지마을이나 소방도로가 협소해 화재 취약 마을을 대상으로 자율방화체계를 구축하면서 마련한 것이라고 한다. 

마을은 화재취약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각 가구당 소화기 1대와 단독경보형감지기 1대가 설치되어 있다.

마을 깊숙이 골짜기로 들어가면 사당골이란 곳에 건립연대를 알 수 없는 절터가 있으며, 그곳 절터에서 기왓장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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