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두마을은 옛날 대두와 소두를 합해 두리라고 불렸던 마을로 풍치나데 전설을 지녔다. 사진은 마을전경, 고씨재각, 공동목욕장, 마을 정자나무, 마을회관 순이다.
쌍두마을은 옛날 대두와 소두를 합해 두리라고 불렸던 마을로 풍치나데 전설을 지녔다. 사진은 마을전경, 고씨재각, 공동목욕장, 마을 정자나무, 마을회관 순이다.

쌍두마을은 마로산성을 정면에 두고 억만천을 끼고 있는 마을로 사라실예술촌에서 옥룡면 재동마을로 이어지는 길가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 뒤쪽으로 행정리상 같은 마을에 포함되는 백동마을이 있다.

■두리(杜里)의 유래

쌍두마을은 본래 광양현 동면(東面) 사라곡리(沙羅谷里)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사라곡면(沙羅谷面)에 속했다. 1789년경 호구총수에는 사곡면(紗谷面) 대두리(大杜里)와 소두리(小杜里)지역이었으며, 왜정시대 행정구역 개편 후인 1917년 조선면리동일람에는 광양면 죽림리(竹林里)였다.

쌍두마을은 밀양박씨(密陽朴氏)가 처음 입촌했다고 전하나 입향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옛날 대두(大杜)와 소두(小杜)를 합해 이 지역을 두리(杜里)라고 불리었는데, 두리(杜里)의 의미는 우리말 어원과 지정학적 여건을 참고할 때 산(山) 안쪽으로 굽어진 곳에 위치한 마을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한편, 전하는 이야기로는 옛날 번지수를 정할 때 한자를 이용한 배정 방식을 사용했는데 이 마을에 ‘기울 측(側)’자가 떨어지자 동네가 쇠할 것이라 여겨 이를 막기 위해 ‘두(杜)’자를 썼으며, 이를 볼 때 마을의 안녕을 빌었던 주민들의 염원이 담겼음을 짐작할 수 있다.

■느티나무와 풍치나데 전설

쌍두마을에는 한해의 벼농사에 큰 도움을 주는 450년 된 상서로운 느티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옛날 마로산성의 무기창고를 관리하던 신씨(申氏)가 심은 것이라 전해온다. 

이 나무는 가뭄 여부와 모심는 시기를 알려줘 풍년의 기틀을 다져줬다고 마을 사람들은 여겼다. 

나뭇잎이 동시에 피면 가뭄이 없고, 여러 차례 나누어 피면 가물며, 잎이 가운데부터 피면 가운데 논부터, 잎이 주변부터 피면 길가 쪽 논부터 심으라는 뜻으로 주민들은 믿었다고 한다.

또 마을에는 ‘풍치나데’ 전설이 전해온다. 풍치나데는 풍치가 난 곳을 일컫는 것으로 인과응보를 주제로 내려오는 전설이다.

옛날 이 마을에 박씨들이 부자로 살며 기세를 부렸는데 스님이 시주하러 오면 공양은커녕 기둥에 묶어두고 물을 퍼부어 못 견디게 곤욕을 치르게 했다고 전한다. 

이러한 소문이 알려지자 어느 도사 한분이 이 마을에 와서, 시주를 요구했고 박씨 가문은 기둥에다 도사를 묶고 욕을 보였다. 그때 도사가 기둥에 묶인 채 박씨 선산이 있는 자리는 부자만 됐지 조금만 옮기면 부와 귀가 나올 자리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풀어주기를 사정하니 박씨 가문에서는 이 말이 정말인 줄 알고 이장을 하려고 묘에 봉분을 헤쳤다고 한다. 

그러자 묘의 봉분에서 김이 나가면서 박씨 가문이 망했다는 전설이다.

마을 주요 시설물로는 마을입구 버스 정류장 옆에 마을 노인정과 공동 목욕장이 있으며, 마을 건너편 죽림리 1290번지에 장흥고씨(長興高氏) 재각이 있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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