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春睡(춘수) 

                                                월헌 정수강

        연기는 곳곳마다 밝은 햇빛 집집마다

        사람들은 한가하게 베개를 즐기는데

        봄 풀은 연못가에서 젖어 있소 꿈속에.

        處處靑煙起    家家白日長

        처처청연기    가가백일장

        人閑好憑枕    春草夢池塘

        인한호빙침    춘초몽지당

매서운 바람에 어깨를 움추렸던 겨울을 지내고 봄이 돌아오면서 어깨가 무겁고 몸이 나른해 진다. 흔히 ‘봄을 탄다’고 했던가. 온 몸이 나른해 지고 모든 생활에 의욕이 없다. 논밭에 나가는 씨를 뿌리고 겨울살이를 거두어 들이는 것조차 잊고 춘몽(春夢)을 꾸거나 춘수(春睡)를 즐기는 것도 연중 행사처럼 빼놓을 수 없는 예삿일이다. 사람들 한가로이 베개를 베고 낮잠을 즐기는데 봄풀은 연못가에서 아직 꿈속에 깊이 젖어 있네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봄풀은 연못가 꿈속에서 깊이 젖어 있구나(春睡)로 번역해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월헌(月軒) 정수강(丁壽崗:1454~1527)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푸른 연기는 곳곳마다 곱게 피어오르고 / 밝은 햇빛은 집집마다 깊이 스며든다네 // 사람들은 한가로이 베개를 베고 낮잠을 즐기고 있는데 / 봄풀은 연못가에서 아직까지도 꿈속에 깊이 젖어 있다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어느 봄날의 낮잠]으로 번역된다. 흔히 낮에 자는 달콤한 잠을 오수(午睡)라고도 하고, 춘수(春睡)라고도 했다. 깊은 독서삼매경에 빠졌다가 베개를 베고 오수에 젖는 시간이 어찌 그리 달콤한지 흐뭇한 쾌감까지도 느낀다. 깊은 낮잠은 사람만 자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삼라만상이 다 깊은 잠에 푹 취했던 것으로 착각할 때도 더러 있다. 자기합리화일 수도 있다.

 시인도 그런 경험이 있었던 모양이다. 본인이 춘수를 즐기고 나니 황홀한 어느 지경에 깊이 빠졌던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푸른 연기는 곳곳마다 곱게 피어오르고, 밝은 햇빛은 집집마다 깊이 스며든다고 했다. 해맑은 깊은 시심에 빠지는 시인의 감정을 ‘處處’와 ‘家家’라는 어휘로 합리화해 버리는 시상을 덧칠해 본다.

 이와 같은 시상이 젖었던 시인은 화자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한가로이 베개를 베고 낮잠을 즐기면서, 봄풀은 연못가에서 꿈속 깊이 젖어 있다는 상상을 이끌어 냈다. 봄은 기지개 켜는 계절이자 일년의 꿈과 설계를 위해 날개를 다는 계절이었으리. 이런 꿈을 춘수(春睡)라는 시제 한 마디에 모두 담아 보려고 했겠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연기 곱게 피어 오르고 밝은 햇빛 스민다네, 한가하게 낮잠 즐기니 봄풀 가득 젖는다네’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월헌(月軒) 정수강(丁壽崗:1454~1527)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1474년(성종 5) 진사를 거쳐 1477년 문과에 급제하고 정언이 되었다. 1482년에는 정조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99년(연산군 5) 장령을 지낸 뒤 1503년 부제학이 되고 1504년 갑자사화 때 파직되었다.

【한자와 어구】

處處: 곳곳에서. 여러 곳에서. 靑煙: 푸른 연기. 起: (연기가) 피어오르다. 일어나다. 家家: 집집마다. 白日: 밝은 햇빛. 따뜻한 봄햇볕. 長: 길게 스미다. // 人: 사람들. 閑好: 한가하게 놀기를 좋아하다. 憑枕: 베게에 의지하다. 곧 낮잠을 자다. 春草: 봄풀. 새싹을 뜻함. 夢: 꿈꾸다. 잠자다. 池塘: 연못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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