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마을은 한때 선착장이 있던 대근과 못이 있던 지동이 합쳐진 마을로 도시개발을 앞두고 있다. 사진은 마을전경, 마을회관, 저수지, 광양항배후단지 갈대, 제철로, 노인회 등이다.
대지마을은 한때 선착장이 있던 대근과 못이 있던 지동이 합쳐진 마을로 도시개발을 앞두고 있다. 사진은 마을전경, 마을회관, 저수지, 광양항배후단지 갈대, 제철로, 노인회 등이다.

대지마을은 광양항 배후단지와 성황도이지구 사이에 자리한 마을로 옆으로는 광양항 전용도로가, 위로는 경전선 철도가, 아래로는 광양항 배후단지 배수로가 인접해 있다. 마을은 행정리상 골약동에 속하지만 지리적으로 보면 중마동과  가깝다.

■마을형성과 지명유래

대지마을은 대근(大斤)과 지동(池洞)마을로 이뤄졌는데 본래 광양현 동면(東面) 골약리(骨若里)지역으로 추정된다.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골약면(骨若面)지역이었고 1789년경 호구총수에는 광양현 칠골약면(七骨若面) 대근촌(大斤村)이라 했다.

마을 형성은 1592년 임진왜란을 전후해 광산김씨(光山金氏)와 기계유씨(杞溪俞氏)가 처음 정착했고 뒤이어 개성왕씨(開城王氏)가 입촌해 대근과 지동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대근(大斤)을 ‘하날꼬지’ 또는 ‘하나곶’이라고도 부르는데 ‘큰 곶에 위치한 마을’이란 뜻이다. 

즉 크다의 뜻을 갖는 옛말 ‘한’을 이용해 ‘한곶’이 ‘하나곶’으로 변화됐다고 보며, 이를 한자로 쓸 때 ‘하나’는 뜻 그대로 크다의 의미로 ‘대(大)’로 쓰고 ‘곶’은 근(斤)으로 써서 ‘대근(大斤)’이라 한 것이다. 

지동은 ‘못골’ 또는 ‘목골’이라고도 하는데 마을 뒤 산기슭에 큰 못이 있었는데 여기에 연유해 ‘못(池)이 있는 동네’라는 뜻의 ‘못골’이라 하고 이를 한문식으로 표기해 지동(池洞)이라 부르게 됐다.

■도시개발계획지역

대지마을은 옛날 선착장이 있어 묘도, 송도, 장도 등으로 통하는 해상통로가 있었던 곳이다. 

‘하날고지’, ‘하날나루’라고 불렀던 이 선착장은 대근지역 동남쪽 끝에 위치해 있었다.

아울러 마을 뒷산 일원에 연못이 있었는데 마을주민들은 이곳 골짜기를 ‘목골’이라고 불렀다. 

이곳에는 옛날 봉화산의 봉수대에서 봉화를 받던 터가 있었다고 전하지만,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대지마을은 성황동과 길호대교를 잇는 제철로에서 마을로 통하는 언덕을 통해 마을로 진입할 수 있으며, 광양환경관리센터 건너편에도 진입 가능한 길이 있다.

마을은 한때 ‘삼베계’라는 자생조직계가 있어 부모사망 시 삼베옷감으로 장의를 제공하고 팥죽을 써서 상가를 돕고 위로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전한다. 

주요 시설물로는 1971년 준공된 대지마을회관이 아직 사용되고 있는데 이 마을회관은 성황천으로 가는 길가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 대지마을을 포함한 인근 일대는 새로운 도시기반시설이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지역 일대는 도시계획상 일반공업지역, 준공업지역으로 분류되어 있었는데 그동안 개발을 하지 못하다가 개발승인이 떨어져 도시개발을 눈앞에 두고 있다. 

마을 일대는 항만배후지이자 도시 인접지역이라는 지리적 여건에 맞춰 복합용지로 개발될 계획이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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