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閨怨(규원) 

                                                매창 이계랑

        말하지는 못했어도 너무나 그리워서

        하룻밤 마음고생 귀밑머리 희었는데 

        가락지 헐거워졌으니 소첩마음 알겠소.

        相思都在不言裡    一夜心懷鬢半絲

        상사도재불언리    일야심회빈반사

        欲知是妾相思苦    須試金環減舊圍

        욕지시첩상사고    수시금환감구위

‘술은 왜 마시느냐’는 질문에 흔히 하는 대답은 ‘취하려고 마신다’고 한다. 주색(酒色)이라고 했다. 아마 술과 여자는 불가분의 상관관계로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시문에서 보인 시기(詩妓) 매창과 잔술을 나누었던 인사도 그랬던 것 같다. 짓궂은 사내에게 시 한 수를 남겼으니 ‘증취객(贈醉客)’이리라. 취객이 명주저고리를 잡아당겨 찢어졌겠지. 소첩의 마음고생 알고 싶다면 손가락에 헐거워진 이 금가락지라마 좀 보시라고 읊었던 시 한수를 번안해 본다.

하룻밤 마음 고생 때문에 귀밑머리 희었지요(閨怨)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매창(梅窓) 이계랑(李癸嫏:1573~1610)으로 여류시인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말은 차마 다 못했어도 너무나 그립고 보고 싶어서 / 하룻밤의 마음 고생에 귀밑머리가 희었지요 // 소첩의 마음고생을 다 알고 싶으시다면 / 손가락에 헐거워진 이 금가락지 좀 보시구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안방의 원망]으로 번역된다. 시제의 본뜻은 남편이나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은 여자의 원한이지만 위와 같이 붙인다. 임진왜란 때문에 첫 순정을 바쳤던 촌은과의 10년이란 별리는 가혹했다. 그래도 한 조각 마음이라도 주었던 임이 있었으니 김제 군수로 내려온 이귀였다. 글재주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위 시의 시적 대상은 두 번째인 이귀로 추정된다. 시인은 말은 차마 다 못했지만 너무나 그립고 보고 싶은 나머지 하룻밤의 마음 고생에 귀밑머리가 희었어요 라는 시상을 일어켰다. 여자의 매력은 은근과 끈기로 임을 기다리는데 매력이 있다는 말을 실감하는 대목이다. 하룻밤 사이에 귀밑머리가 희었다는 표현의 착상을 한껏 시격을 높이고 시의 멋을 더한다.

 화자는 귀밑머리라는 선경의 시상에 이어 후정을 마음을 잘 다독여 본다. 위와 같은 소첩의 마음고생을 진정 알고 싶으시다면, 귀밑머리가 희어질 정도로 애를 태운 손가락에 헐거워진 이 금가락지 좀 보시라는 현실적인 상상을 달아냈다.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과의 플라토닉사랑(Platonic love)도 우리의 가슴을 잔잔하게 울려준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너무 그립고 보고 싶어 귀밑머리 희었지요, 소첩마음 알고 싶다면 금가락지 보시구려’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매창(梅窓) 이계랑(李桂娘:1573~1610)으로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이다. 1573년(선조 6) 부안현의 아전 이탕종의 딸로 태어났다. 부안의 기생으로 개성의 황진이와 더불어 조선 명기의 쌍벽을 이루었다. 평생토록 노래를 잘했으며 가무, 현금에도 능한 다재다능한 예술인이었다.

【한자와 어구】

相思: 보고 싶다. 都在: 모두 ~에 있다. 不言裡: 말하지 못한 가운데. 一夜: 하룻밤에. 心懷: 마음의 회포 鬢半: 귀밑머리 절반. 絲: 실. 곧 흰 실. // 欲知: 알고자 하다. 是妾: 이 소첩. 相思苦: 보고 싶은 고통. 須試: 모름지기 시험하다. 金環: 금가락지. 減: 달다. 헐거워지다. 舊圍: 옛날의 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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