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흥 남(前 한려대 교수, 문학평론가)
전 흥 남(前 한려대 교수, 문학평론가)

아내가 상경(上京)해서 나흘 정도를 홀로 지냈다. 이런 경우 흔히 남자들이 잠시나마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다고 좋아들 한다. 아내로부터 상대적으로 간섭을 좀 덜 받으니 홀가분한 기분을 이렇게 표현한 것 같다. 개인차도 있겠지만 대체로 그렇다는 말이다. 

특히 정년 후 아내와 함께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경우, 다른 말로 해서 흔히 ‘아내와 동선이 많이 겹치는’ 날에는 좋을 때도 있지만 아내로부터 잔소리(?)를 듣는 빈도가 많으면 아내의 외출이 반갑다. 아내의 부재를 ‘자유로운 영혼’을 들먹이는 속내는 남편의 입장에서 아내의 잔소리로부터 잠시나마 해방된 것에 대한 홀가분함의 함축적 표현인 셈이다. 아내의 잔소리로부터 해방된 경우에 대한 기쁨의 역설적 표현이기도 하다. ‘영혼’을 그렇게 쉽게 갖다 붙이면 안 되는데 말이다. 

나의 경우 하루 이틀은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았다. 사나흘 정도 되니 아내의 부재(?)는 어쩐지 불편하고 허전한 마음이 더 크다. 그렇다고 아내의 잔소리가 듣기 좋은 건 아니다. 그래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진정으로 나를 위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족, 특히 아내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남들은 나의 단점이 보여도 웬만해서 충고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아내는 비교적 쉽게 하는 것 같다. 나의 ‘야당’인 셈이다.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윤기(1741-1826)의 문집 『무명자집(無名子集)』에 물경소사 소극침주(勿輕小事 小隙沈舟)라는 말이 나온다. “작은 일이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라. 작은 틈새가 배를 가라앉힌다” 의미를 담고 있다.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겠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적용해 보면 커다란 의견 차이나 갈등으로 인해 소원해지기도 하지만 작은 일로 다투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부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게다. 사소한 의견차이로 부부간의 갈등이 유발되기도 하고 기분이 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심지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경우도 있다. 이런 파국을 막는 지혜가 요구된다. 

아내가 집을 며칠 비우니 우선 삼시세끼 챙겨먹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내가 며칠 먹을 반찬이나 음식을 챙겨놓고 갔어도 혼자 먹으니 ‘음식에 온기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먹어 보니 맛도 덜한 것 같다. 그리고 냉장고를 열어보면 음식을 만들 때 필요한 재료들이 가득 있으나 내 경우엔 ‘그림에 떡’인 격이 더 많다. 요즈음 요리 잘 하는 남자들이 많다고 하던데 나의 경우는 서툴고 익숙하지도 않다. 나의 타성을 탓하면서도 솔직히 그들이 부럽다.  

무심결에 집안을 돌아보거나 살림도구들을 챙기다 보면 ‘살림도 예술이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살림에 필요한 각종 도구들이 잘 정돈되어 있는 걸 보면서 ‘내가 편하게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혼자 살아도 다 적응하기 마련이고, 또 비교적 잘 사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내 경우는 아직은 아내의 손이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의 부재가 반갑지만은 않다.  

막연하게 생각했을 때와 실제로 내가 직면했을 때 간극이 생각보다 큰 경우가 많다. 그래서 타인이 이룬 소소한 성과도 예단해서 과소평가하지 말고 공감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불과 나흘 정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아내의 부재’로 인한 빈자리를 실감했다.  

무엇보다 허전한 마음이 제일 크다. 그래서 흔히 어르신들이 ‘든 자리는 크게 표 나지 않아도 빈자리는 크다’고 했는가 보다. 이것은 단순히 공간의 확대와 축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유행가 가사 중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그래서 공감이 간다. 마음처럼 쉽지 않지만, 그래도 곁에 있을 때 잘 하세요! 그러고 보니 5월은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가정의 달이다.

chn007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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