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途中[2](도중) 

                                          지봉 이수광

 

        풍경은 시속에서 그림처럼 읊어지며

        개울은 물속에서 악보처럼 연주하고

        산마루 넘어가는 해 멀리에서 부서져.

        景入詩中畵    泉鳴譜外琴

        경입시중화    천명보외금

        路長行不盡    西日破遙岑

        노장행부진    서일파요잠

개울물 주절거리는 소리가 악보 없는 가락이요, 소나무가 한 소리 창을 해대면 어울리는 리듬인 것을. 바람을 품속에 안고 댓잎이 한 바탕 울어대면 멋진 서편제 한 마당이요, 버들가지가 덩실덩실 춤추게 되면 멋진 자진모리 풍류가 아니던가. 선인들은 자연을 두고 그런 생각을 했고, 자연이 그와 같은 한 마당을 연출해 낸다고 생각했다. 풍경은 시 속에서 그림처럼 읊어지고, 멀리 지는 해는 저만치 산마루에 부서지네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흐르는 개울물은 악보 없는 가락을 타고 있다네(途中2)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율시 후구다. 작자는 지봉(芝峯) 이수광(李晬光:1563~1628)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풍경은 시 속에서 그림처럼 읊어지고 / 개울물은 악보 없는 가락을 연주한다네 // 갈 길은 멀고 멀어서 가도 가도 끝이 없는데 / 멀리 지는 해는 저만치 산마루에서 말없이 부서지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길을 걸으면서2]로 번역된다. 길을 걷는 발길도 시심의 덩이는 마냥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함께 길을 걸었을 것이다. 머릿속에 있으면 시상이 되고, 언로를 구상하면 시의 밑그림이 되며 글로 옮기면 시가 된다. 이런 시상의 시가 전구에서는 [강둑 버드나무는 사람을 보고 춤을 추고 / 숲 속 꾀꼬리는 나그네를 따라 노래 부르네 // 비가 개이니 산 모습은 산뜻하고 / 바람이 따스하니 풀잎도 돋아나네]라고 했다.

 시인은 자연을 보면서 자연에 몰입하는 과정을 본다. 그래서 자연의 풍경이 시 속에서 그림처럼 읊어지고, 개울물은 악보 없는 가락을 부지런히 연주한다고 했다. 개울물까지도 악보없는 가락을 연주한다고 했다면 자연의 하모니였음에 분명하다.

 자연에 흠뻑 취해 있던 화자는 더는 참을 수 없었던 몰아(沒我)의 지경에 파묻혔다가 가만히 눈을 뜨고 자기의 위치는 파악해 본다. 갈 길은 멀어서 가도 가도 끝이 없음 알고 난 연후엔 멀리 지는 해는 저만치 산마루에 부서진다고 했다. 시상 주머니를 주섬주섬 담아서 발길을 재촉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소박한 심정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시 속 풍경 읊어지고 가락 연주 개울물은, 가도가도 끝없는데 지는 해는 부서지네’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지봉(芝峯) 이수광(李晬光:1563~1628)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주청사로 연경에 왕래하였고, 당시 명에 와 있던 이탈리아 신부 마테오 리치의 저서 <천주실의> 2권과 <교우론> 1권 및 중국인 유변, 심인기 등이 지은 <속이담> 6권을 가지고 돌아왔다고 한다.

【한자와 어구】

景: 풍경. 入詩中: 시속에 들어서. 畵: 그림. 그림 같이 읊다. 泉: 개울물. 鳴: 울다. 곧 연주하다. 譜外: 악보 외의 악보. 곧 가락이 없다. 琴: 거문고. 여기선 가락이나 음악을 뜻함. // 路: 길. 곧 갈 길. 長行: 멀리 행하다. 不盡: 다하지 못하다. 西日: 서산의 해. 破: 부서지다. 遙岑: 먼 산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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