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宿山寺(숙산사) 

                                       기재 신광한

 

        고요한 산사에서 옛 글을 읽었었고

        늙어서 우연하게 옛 절을 찾았는데 

        지금도 부처님 앞에 등잔불이 켜있네.

        少年常愛山家靜    多在禪窓讀古經

        소년상애산가정    다재선창독고경

        白首偶然重到此    佛前依舊一燈靑

        백수우연중도차    불전의구일등청

사람에겐 귀소성(歸巢性)이 있다. 한국민에게는 그 진함이 더 한 것 같다. 한 번 있었던 곳을 다시 찾으려 하고, 한 번 갔던 길로 가려고 한다. 타향에 있으면서도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 친구를 만나면 등이라도 칠 양으로 반가움을 금치 못한다. 어쩔 수 없는 귀소성의 현상이다. 그래서 수구지심(首邱之心)이란 말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어려서부터 산 속의 절에서 고요함을 즐기더니만, 산 속 절에서 옛 글 읽기를 즐겨했었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늙어서 우연하게 옛 절을 다시 찾아왔었으니(宿山寺)라고 제목을 붙이는 칠언절구다. 작가는 기재(企齋) 신광한(申光漢:1484∼1555)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성질이 어려서부터 산 속의 절에서 고요함을 즐기더니만 / 산 속 절에서 옛 글 읽기를 즐겨했네 // 늙어서 우연하게 옛 절을 다시 찾아왔으니 / 부처의 앞에는 지금도 등잔불을 켜고 있다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산사에 묶으면서]로 번역된다. 기재는 필력이 뛰어나 2편의 ‘몽유록’과 ‘전’을 남겼는데 [안빙몽유록(安憑夢遊錄)]·[서재야회록(書齋夜會錄)]이다.〈안빙몽유록〉에서는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안빙’이란 사람이 꽃동산에서 잠이 들었다가 꽃나라에 가서 시를 읊었다는 내용이고, [서재야회록]은 어느 선비가 못 쓰게 된 벼루·붓·먹·종이가 버림받게 되었다고 서러워하는 것을 엿듣고 정중하게 땅에 묻은 뒤 제사지냈다는 내용이다.

 위 두 편의 작품에서 보듯이 자신의 처지를 소설과 같이 엮었다. 어려서부터 성질이 고요함을 늘 즐기면서도, 산 속 절에서 옛 글 읽기를 즐겨했다는 사상을 떠올리고 있다. 자신의 행적으로 절구로 엮기란 쉽지 않다. 고요한 절에서 책읽기를 좋아했음을 상기시킨다.

 이런 독서의 습관이 몸에 젖어있던 화자는 늙어서 또 다시 우연하게 옛 절을 다시 찾아왔음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다소곳이 부처의 앞에는 등잔불을 켜고 깊은 있다는 시상이다. 독서를 했는지 사색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용한 성격에 자기를 깊숙이 감추는 차분한 모습이 시 속에 은은하게 배겨나온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산속 절을 즐기더니 옛글 읽기 좋아했네, 우연하게 옛절 찾으니 등잔불 켜고있네’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기재(企齋) 신광한(申光漢:1484∼1555)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다른 호는 낙봉(駱峰), 석선재(石仙齋), 청성동주(靑城洞主) 등 마음대로 아호를 썼다. 신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숙주이며, 아버지는 신형이다. 어머니는 사포 정보의 딸이다. 문장에 능하고 필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한자와 어구】

少年: 소년. 어려서부터. 常愛: 늘 좋아하다. 山家: 산속의 집. 靜: 고요하다. 성격이 고요함을 뜻함. 多在: 많이 있다. 禪窓: 선가의 창. 讀: 읽다. 古經: 옛 경서를 읽다. // 白首: 늙다. 偶然: 우연히. 重: 거듭. 다시. 到此: 이곳(절)에 도달하다. 佛前: 불전 앞. 依舊: 옛에 의지하다. 一燈靑: 등을 밝게 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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