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장마을은 구봉산 자락에 자리한 마을로 고려시대 불교문화를 알 수 있는 광양성황3층석탑을 볼 수 있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마을전경, 용장사, 성황3층석탑, 강덕열 공덕비, 마을정자, 마을회관 순이다.
용장마을은 구봉산 자락에 자리한 마을로 고려시대 불교문화를 알 수 있는 광양성황3층석탑을 볼 수 있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마을전경, 용장사, 성황3층석탑, 강덕열 공덕비, 마을정자, 마을회관 순이다.

용장마을은 구봉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로 광양만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구봉산 전망대 가는 길에 나온다. 마을 앞쪽에 유유히 흐르는 성황천 물줄기가 천혜의 자연환경을 만들고 있다.

■마을유래와 변천

용장마을은 본래 광양현 동면(東面) 골약리(骨若里) 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골약면(骨若面) 지역에 속했다.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 행정구역 개편이전에는 광양군 골약면 용장리(龍藏里)라 하여 문헌상 처음으로 마을이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용장마을은 임진왜란을 전후해 여수 돌산에서 진양정씨(晉陽鄭氏)가 처음 이 지역에 입촌해 마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마을 이름유래는 제철 산업도로변의 마을입구에서 본정재 아래까지 도로를 따라 군데군데 있는 마을군을 총칭해 용장(龍藏)이라 하는데 고려시대 이 고을에 세운 용장사(龍藏寺)라는 절 이름을 따서 용장이라 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으로는 윗용장 서쪽에서 사곡리 본정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용소(龍沼)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용이 살았다는 전설에서 마을이름이 연유됐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용장마을은 1950년대 말까지는 벽지로서 면사무소를 가는데 군도(마을입구 도로)까지 사람만 다닐 수 있는 오솔길이 유일한 통로였다. 1960년대에 이 마을 이장이던 강덕열(姜德㤠)이 앞장서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도로를 확장・개설하게 했고, 마을 사람들은 그의 공을 기리기 위해 아랫용장 송곳바위에 공덕비를 세웠다. 지금은 용강마을회관 앞으로 그의 공덕비가 이전됐다.

■광양성황3층석탑

용장마을은 크게 안용장과 바깥용장으로 구성돼 있다. 안용장은 용장사가 있었던 곳으로 용장의 중심마을이며, 바깥용장은 제철산업도로쪽 가까이에 있는 마을로 지금은 몇 가구만 살고 있다.

안용장에는 ‘탑선이탑’이라 불리는 석탑이 있는데,  ‘광양성황3층석탑’이 그것이다. 성황동 745-1번지에 위치한다. 1972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됐으며, 현재 용장사 입구에는 성황3층석탑 안내판이 마련돼 있다.

성황3층석탑은 고려시대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탑 근처에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관련 기록이 없어 사찰의 정확한 이름이나 내력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현재의 용장사는 그 일대에 새로 중건된 사찰이다.

광양성황3층석탑은 용장사 대웅전 왼쪽에 마련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나온다. 규모는 높이 3.5m, 지대석 1.5m방형(方形)이고, 재료는 화강석을 사용했다.

정방형의 지대석 위에 수장의 판석(板石)으로 만든 중석(中石)이 있고 그 위에 상대석이 있다. 지대석과 하층기단의 중석은 각각 별석(別石)으로 4개 판석(板石)으로 짜고 4면에는 우주(隅柱)와 중앙에 탱주가 있는데 윗면으로 상층기단부를 받기 위해 몰딩을 생략한 것이 독특하다.

머리 장식은 받침(노반), 엎어놓은 그릇 모양의 장식, 꽃봉오리 모양의 장식(보주)이 차례로 얹혀있다. 한때 기단부가 파손됐으나 1976년에 완전 보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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