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題路傍松(제로방송) 

                                                충암 김정

 

        바람 소리 불어가니 그림자가 성글구나

        바람 소리 곧은 뿌리 샘 아래 뻗어가니

        차가운 눈과 서리도 높은 품격 털지 못해.

        海風吹去悲聲壯    山月高來瘦影疎

        해풍취거비성장    산월고래수영소

        賴有直根泉下到    雪霜標格未全除

        뇌유직근천하도    설상표격미전제

바람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을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태풍을 몰고 오고, 모진 비바람을 몰고 오기 때문이다. 서 있는 나무가 쓰러지고 집이 무너지는 상황까지도 연상하기 때문이겠다. 바람이 창문을 두들기면 도둑이라도 들어 올 느낌을 받는다. 나들이도 할 수 없고, 꼼짝없이 집에서만 갇혀 있는 신세가 되기 일쑤다. 바닷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니 슬픈 소리는 거세지고, 차가운 눈과 서리도 높은 품격 털어내지 못한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바람소리에 곧은 뿌리는 샘 아래로 뻗어가니(題路傍松)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충암(沖菴) 김정(金淨:1486~152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바닷바람 불어오니 슬픈 소리는 더욱 거세지고 / 산에는 달이 높이 뜨니 야윈 그림자 성글구나 // 바람소리에 곧은 뿌리는 샘 아래로 뻗어가니 / 차가운 눈과 서리도 높은 품격 털어내지 못하는구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길 가의 소나무를 보고]로 번역된다. 사냥꾼들은 총이나 배낭 같은 도구를 짊어지고 다니지만, 시에 달관한 시인들은 흔히 ‘붓과 종이를 시통(詩筒)’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여러 상황과 대상물들은 시적인 상관물이라고 한다. 시인을 길가에 서있는 소나무 한 그루를 보고 나서 큰 시심을 일으켰던 모양이다.

시의 소재가 되는 객관적상관물을 보고도 시인이 따라서 그 느낌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겠다. 시인은 바닷바람 불면서 바다 어느 편으로 에돌아서 멀리 가니 슬픈 소리 거세지고, 산에는 달이 높이 뜨니 야윈 그림자 성글구나 라는 시상을 떠올렸다. 바닷 바람은 쉽게 가지 못하고 회오리 바람으로 가는 수도 있지만, 산이나 언덕 같은 어느 장애물이 부딪치면 에돌아서 가는 모습을 상상해 냈다.

 화자의 후정은 나무의 뿌리들이 지심(地心)을 향해 깊이 스며들어 튼튼하게 자리를 잡아 간다는 사상을 떠올리게 된다.  바람소리에 곧은 뿌리 샘 아래로 뻗어가니, 그래서 차가운 눈과 서리도 높은 품격 털어내지 못하하고 자기만을 보호하려는 은근한 태도를 보였다는 사상 주머니를 채우고 만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바닷 바람 거세지고 야윈 그림자 성글다네, 곧은 뿌리 뻗어가나 털지 못한 높은 품격’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충암(沖菴) 김정(金淨:1486~1520)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1504년(연산군10) 사마시에 합격했고, 1507년(중종2)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성균관전적에 보임되었다. 이어 수찬, 정언, 병조정랑, 부교리 등을 두루 거쳐 순창군수를 지내다 보은에 유배되기도 했다고 한다.

【한자와 어구】

海風: 해풍. 바닷바람. 吹去: 불면서 가다. 悲聲> 슬픈 소리. 壯: 장엄하다. 거세다. 山月: 산 위에 뜨는 달. 高來: 높으 떠서 오다. 비치다. 瘦影: 야윈 그림자. 疎: 성글다. // 賴有: 뻗어가다. 의뢰해 있다. 直根: 곧은 뿌리. 泉下到: 샘 아래에 있다. 雪霜: 눈과 서리. 標格: 높은 품격. 未全除: 제가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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