德山卜居(덕산복거)

                                                  남명 조식

        하늘이 가까워서 봄 산에 집을 지었다

        빈손으로 왔으니 무얼 먹고 살 것인가

        은하가 십리나 되니 배불리고 남겠지.

        春山底處无芳草    只愛天王近帝居

        춘산저처무방초    지애천왕근제거

        白手歸來何物食    銀河十里喫猶餘

        백수귀래하물식    은하십리끽유여

하늘을 지붕 삼고 이리저리 떠돌다가 어느 지점에 정착하여 영원한 자기 안식처를 잡는 경우가 많다. 나이들수록 더하리. 생명이 다할 때까지 살겠다는 자기 의지다. 낯선 곳도 정이 들고, 이웃 사촌이라고 했던가 모든 이웃이 사해동포다. 이사를 오면 떡을 해서 이웃에 돌리는 아름다운 풍습도 있었으니 [미풍美風]이리라. 봄 산 어디엔들 아름다운 꽃이 어디 없겠는가, 내가 여기에다 집을 지은 이유는 다만 하늘이 가까워서라네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빈손으로 여기까지 왔으니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德山卜居)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봄 산 어디엔들 아름다운 꽃이 어디 없겠는가? / 내가 여기다 집을 지은 이유는 다만 하늘이 가까워서라네 // 빈손으로 왔으니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 은하가 십리나 되고 있으니 먹고도 남겠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덕산에 터를 잡고서]로 번역된다. 덕산은 예산군과 서산시에 있는 산으로 알려지나, 이 지명은 각처에 많이 있어 딱히 어디라고 종잡아서 이야기할 수 없는 곳이다. 시인이 거주했던 어느 마을의 뒷산이 아니었던가 짐작된다. 이리저리 거처를 옮기다가 안정된 위치에 있는 ‘덕산’에 자리를 잡았던 모양이다.

 꼭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집터의 자리는 이른바 ‘운대’가 맞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가끔 한다. 그렇더라도 시인은 하늘이 가까운 높은 지대에 집터를 잡았겠다. 봄 산 어디엔들 아름다운 꽃이 어디 없겠는가 만은 내가 이곳 덕산에 집터를 잡은 이유는 다만 하늘이 가까워서라네 라는 근천(近天)이란 시상을 일으켰다. 보통 사람들이 터 잡는 곳보다 훨씬 높은 곳에 집터를 잡았다고 했다.

 화자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 보이는 시심을 만난다. 사람이 빈손으로 왔으니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라고 반문하면서 은하가 십리나 되고 있으니 먹고도 남음이 있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하늘의 뜻에 의해 내려준 천복(天福)과 음식을 받아 평생을 먹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란 시상으로 보인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아름다운 꽃 없겠는가 하늘 가까워서라네, 빈손인데 무얼 먹나 은하십리 먹어야지’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으로 조선 중기의 학자이다. 삼가현 토골 외가에서 태어났으며, 20대 중반까지는 서울에 살면서 성수침·성운 등과 교제하며 학문에 열중하였다. 25세 때 <성리대전>을 읽고 이때부터 성리학에 전념하였다. 30세 때 김해 탄동으로 이사해 운거했다.

【한자와 어구】

春山: 봄산. 底處: 어디에나. 无: 없다. ‘無’와 같음. 芳草: 아름다운 꽃. 只愛: 다만 사랑하다. 天王: 하늘. ‘하느님으로 볼 수도 있음. 近帝居: 하느님이 사는 곳과 가깝다. 곧 하늘과 가깝다. // 白手: 빈손. 歸來: 돌아오다. 何物食: 무슨 음식을 먹을까. 銀河: 은하계. 十里: 십리. 喫: 먹다. 猶餘: 오히려 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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