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산마을은 중마동에서 광양읍으로 넘어가는 ‘고삽치’고개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마을전경, 마을회관, 유씨제각, 마을정자, 고삽치고개 순이다.
정산마을은 중마동에서 광양읍으로 넘어가는 ‘고삽치’고개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마을전경, 마을회관, 유씨제각, 마을정자, 고삽치고개 순이다.

정산마을은 중마동에서 광양읍으로 가는 국도, 즉 중마IC 가기 전에 위치한 고개길을 마주하고 있는 마을이다. 성황교차로 우측에 군재마을로 향하는 작은길을 따라가면 나온다. 마을 바로 위에는 광양항전용도로가 지나고 있다.

■ 우뚝 솟은 마을

정산마을은 본래 광양현 동면(東面) 골약리(骨若里)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골약면(骨若面) 지역에 속했다.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 행정구역 개편 이전에는 광양군 골약군 정산리(定山里)라 하여 문헌상 처음으로 마을이름이 나타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수동리・성황리・정산리・용장리와 병합되어 골약면 성황리에 속했다. 

현재는 광양시 골약동 지역으로 법정리상 성황동에 속한다.

정산마을은 약 150년 전에 진양강씨(晋陽姜氏)가 처음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고 전한다. 

정산(定山)이라는 이름 유래는 마을에 위치하고 있는 뒷산이 우뚝 솟아 ‘솟뫼’라 하는데 이와 연유해 마을이름을 ‘솟뫼’라고도 불렀다. 

‘솟뫼’에서 ‘솥뫼’가 되어 처음에는 이를 한문식으로 정산(鼎山)이라 했는데 마을이름이 아름답지 못하다 하여 정산(定山)으로 바뀐 것이라 전하고 있다.

마을 동북쪽 안골이란 골짜기에는 ‘정산도요지’가 위치한다. 

도요지는 도기나 토기를 굽던 가마터인데, 현재는 유씨제각과 가옥이 들어서 있다. 요지의 행태는 전혀 알 수 없으나 자기편만이 이곳이 요지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곳에서 수습된 자기편들은 그 연대가 17세기로 보인다.

또 다른 장소에도 도요지가 있는데 군장과 재동마을 쪽으로 들어가는 산업도로의 바로 아래쪽에 위치하는데 현재는 대나무숲이 우겨져 있다. 

이곳에서 수습된 백자편은 작고 그 모양이 미미하며, 17세기 후반에 사용된 요지로 추정된다.

■고삽치와 몰궁구리

정산마을 북쪽에서 광양읍 또는 골약동 중양(中壤)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를 ‘고삽치(高삽치)’라 하는데 마을주민들은 ‘고십재’라고도 부른다. 

옛날에는 이곳 고갯길이 관행(官行)길이지만 가파르고 험해 나라에서 안전을 위해 단(壇)을 놓고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도이・성황・중동・마동 주민들이 광양시장으로 가는 유일한 교통로였다. 60년대 말부터 주민 숙원사업으로 험난한 산고개를 낮추고 길을 정비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광양출신 김종호장군으로부터 장비지원 등 큰 도움을 받았다. 

1980년대 말, 광양제철소 진입도로 개통으로 4차선 도로를 확・포장해 옛길의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됐다.

고삽치(高揷峙) 한문글자를 뜻풀이하면 ‘높을 고(高), 꽂을 삽(揷), 고개 치(峙)’가 되어 말의 뜻이 애매모호해 그 의미를 이해하기가 곤란하다. 

그러나 ‘고삽’의 원뿌리 말은 ‘고샅’인데, 고샅은 좁은 골짜기 사이라는 뜻이 있다. 따라서 ‘고샅재’를 한문식으로 쓰면서 고삽치(高揷峙)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마을 북쪽에 있는 고개를 ‘몰궁구리’라고 하는데 동북쪽으로 옥곡면 선유리로 통하는 매우 가파른 고개가 산허리를 타고 이어져 있다. 

옛날 말을 타고 가다 궁글었다(뒹굴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포항이 개항되자 새로운 도로가 나기 시작하면서 가파른 고개들이 많이 정비됐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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