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촌마을은 진상면 외금마을과 인접해 있는 마을로 남해고속도로 아래의 굴다리를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사진은 마을전경, 마을회관, 징거미혈, 표지석, 굴다리 순이다.
금촌마을은 진상면 외금마을과 인접해 있는 마을로 남해고속도로 아래의 굴다리를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사진은 마을전경, 마을회관, 징거미혈, 표지석, 굴다리 순이다.

금촌마을은 옥곡면과 진상면 경계에 있는 잼비산을 등지고 있는 마을로 남해고속도변을 따라 진월면으로 가는 길가에 위치한다. 위치상으로 진상면 외금마을과 맞닿아 있지만 남해고속도로 아래를 관통하는 굴다리를 통하면 마을 정면이 된다.

■마을유래

금촌마을은 본래 광양현 동면(東面) 옥곡리(玉谷里)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옥곡면에 속했다. 1789년경 호구총수에는 이 마을과 바로 인접해 있는 진상면 내금(內錦)・외금(外錦)마을을 금련촌(錦蓮村)이라 했는데 이곳 금촌(錦村)마을도 옛날에는 금련(錦蓮)이라 했음을 참고하면 당시 이 마을도 금련촌(錦蓮村) 관할지역인 것으로 추정된다.

금촌마을은 1820년쯤 진양정씨(晋陽鄭氏)가 처음 이곳에 정착했다고도 하며, 1916년에 인동장씨(仁同張氏)가 처음 입촌했다고도 전한다. 

하지만 문헌상 기록에 의하면 1789년경에 이미 이 지역에 마을이 형성돼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처음 마을이름인 금련(錦蓮)은 마을뒷산의 형국이 비단결과 같이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전하며, 그 이후 이름인 금촌(錦村)은 진상면 내금(內錦)・외금(外錦)의 경우와 같이 두 글자의 마을로 이름을 고치는 과정에서 ‘련(蓮)’자를 삭제한 것으로 짐작된다.

전하는 바로는 조선 초기에 함종어씨(咸從魚氏) 부원군이 이곳에 유배되어 지내면서 일가를 이루며 1000석 지기로 살았다고 한다. 그 이후 자손들이 망해 다른 고장으로 이주했는데 몇 년 전만 해도 이 마을에 함(咸)씨 문종의 묘가 있었으나 타지역으로 이장됐다. 이 마을 동굿으로 가는 모퉁이 바위에 ’함종어씨지묘(咸從魚氏之墓)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으나 현재는 글자가 지워져 버렸다.

■삼발등과 징거미혈

옥곡면과 진상면 경계에 있는 산등성이를 ‘산발등’이라고 하는데, 세 개의 크고 작은 산등성이가 남쪽으로 뻗어 ‘삼발이’형국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삼발등의 기점(起點)이 되는 산은 밤골산으로 추정되며 세 개의 산등성이 중 첫 번째는 지금은 사라졌지만 옥곡면 산요마을의 버스정류장에서 쭉 내리뻗어 지금의 남해고속도로 변까지 위치한 산등이고, 두 번째는 옥곡면 금촌마을을 싸안고 있는 좌측 산등이다. 세 번째는 금촌마을 우측, 진상면 외금마을로 내리뻗은 산등이 되는데, 내금쪽으로 내리뻗은 산등도 함께 포함될 수 있다.

이곳 삼발등과 연관돼 이 고장(옥곡・진상)이 옛 마을 금련촌(錦蓮村)으로 유래된 것은 진월면 장재마을에 위치한 옥녀봉(玉女峰)의 옥녀가 이 지역에 비단을 펼쳐 놓아 마치 연꽃의 밥같이 3개가 주렁주렁 달린 모습이라는 뜻에서 금련촌(錦蓮村)이라 했다고 전한다.

금촌마을 지형과 관련되어 전하는 이야기로서 마을 위쪽 가장 높은 봉우리는 징거미의 머리에 해당되고, 몸체는 마을, 발가락은 마을양쪽을 싸안으며 양쪽으로 길게 나온 2개의 발가락 형상이라고 한다. 마을 앞의 개(갯가)를 염전으로 하기 위해 제방이 축조되어 막아 버렸으니 징거미가 갯가의 밥이나 물을 먹을 수 없어 풍수지리상 마을형세가 좋지 않은 형국이 됐다고 주민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

양재생 기자

저작권자 © 광양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