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망기 발행인
황망기 발행인

1990년대 초반, ‘내탓이오’라는 스티커를 자동차 뒷문에 붙이고 다니는 차량들이 거리를 채운 적이 있었다. 문제에 대해 남을 탓하기 보다 자신이 먼저 반성하자는 운동이었다. 천주교에서 시작된 ‘내탓이오’ 운동은 사회 전반의 문제들을 남을 탓하기 보다 자신부터 반성하자는 취지의 운동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내탓이오’라는 스티커를 자동차에 붙이고 다닌다고 해서 사회적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누구나 남을 탓하기 전에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경구로서는 유효했다고 본다. ‘내탓이오, 내탓이오, 나의 큰 탓이로소이다’라는 말은 카톨릭의 기도문에 나오는 문구다. 30여년도 전에 시작된 ‘내탓이오’를 새삼 떠올리게 되는 것은 2023년 오늘 현재에 만연한 ‘네 탓’이 과연 정상적인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서다. ‘내 탓’은 없고, 온통 ‘네 탓’만 있다. ‘덕분이오’는 없고, ‘너 때문이야’만 있다. 가히, ‘내로남불’의 시대다. 그러다 보니 온갖 참사와 말도 안되는 사건사고에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그냥 ‘네 탓’만 있을 뿐이다.

세계 각국이 공인된 국제행사를 개최하기 위해 치열한 유치전을 벌이는 이유는 그러한 행사를 통해 자기나라의 문화와 국력을 과시하고, 국가홍보를 하기 위한 것이다. 월드컵이나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행사가 그렇고, 박람회와 같은 행사도 국가의 위상을 과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세계의 청소년들을 초청해 열리는 세계잼버리대회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국제행사들은 유치준비에만 수년이 걸리고, 유치에 성공한 후에는 성공적인 행사개최를 위해 수년간을 준비하며, 행사가 열리는 짧은 기간 동안 성공적인 행사개최를 위해 국력을 집중하게 된다. 부산 2030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 정부는 물론 민간기업들까지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도 성공적인 행사개최를 위해 우리의 국격을 한단계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찬 노림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잼버리대회가 우리의 국가적 위상을 전세계에 과시하기는 커녕 국격을 실추시키는 망신의 장이 되고 있다. 허술한 준비가 가장 큰 원인이다. 그런데, 행사를 책임지고 치러야 할 정부관계자를 비롯한 책임있는 사람들은 벌써부터 ‘네 탓’ 공방만 벌이고 있다. 성공적인 행사였다면 ‘내 덕분’이고, 실패한 행사는 ‘네 탓’으로 돌리면 되니 얼마나 편리한 사고방식인가? 그러는 사이 국격은 한 없이 추락하고 있다.

도심 한 복판에서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해도 ‘네 탓’이요, 수해로 길을 가던 사람들이 차안에 갇혀 죽어가도 ‘네 탓’이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내가 거기 있었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는 한마디로 빠져나간다. 멀쩡하게 추진되던 고속도로를 구부려놓고도 왜 그런지 의문을 제기하면 그 역시 ‘네 탓’이다. 그리고, ‘공정과 상식’을 이야기한다. 참으로 괴이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하여, 2023년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까? ‘네 탓’의 시대, ‘내로남불’의 시대를 살아야 하는 현실이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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