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마을은 옛날 섬이었던 마을로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경남 하동을 마주하고 있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마을전경, 유리온실, 김태업여사 선덕비, 제방 자전거도로, 마을회관 순이다.1001
중도마을은 옛날 섬이었던 마을로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경남 하동을 마주하고 있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마을전경, 유리온실, 김태업여사 선덕비, 제방 자전거도로, 마을회관 순이다.1001

중도마을은 진월면 끝자리에 자리한 마을로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경남 하동을 마주하고 있다. 마을은 옛날 섬이었으나 제방축조로 인해 육지가 됐다. 

진월면 가길마을 방향에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가 있으며 반대쪽 섬진강변에는 갈대쉼터가 조성돼 있다.

■마을형성 및 지명유래

중도(中島)마을은 1760년경에 펴낸 ‘여지도서’에 당시 중도마을 부근에 있었던 섬인 마조도(馬槽島)와 함께 처음 문헌에 나타났다. 

문헌상 기록에 의거해 마을연혁을 살펴보면 중도마을은 본래 광양현 동면(東面) 월포리 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이후에는 월포면(月浦面)에 속했다. 1789년경 호구총수에 중도는 당시 행정구역상 광양현 월포면 마조도(馬槽島)지역에 속했는데, 마조도는 현재는 사라진 섬으로서 당시는 중도 동북쪽, 섬진강 가운데 있었는데 크기가 상당한 섬으로 이 시대에는 중도보다 많은 인구가 살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도마을은 문헌상 검토한 바에 의하면 330년 전에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약 80년전까지만 해도 진월면과 다압면 경계지역인 돈박골에서 섬진강지류가 갈라져 섬진강물이 가길과 중도섬 사이(현재는 제방이 됨)를 거쳐 대리·가길에서 내려오는 물과 합수지점까지 강이 됐는데 이 강을 광양강(光陽江)이라 했다. 

당시 중도는 섬진강 본지류와 광양강 사이의 중간에 위치한 섬이라 하여 중도(中島) 또는 중섬이라 했다.

또한 중섬은 한때 문헌상 월등도(月登島)라고도 했는데 중섬의 제방이 축조되기 전에 섬진강 만조시 가운데 떠 있는 섬이 마치 달이 떠오르는 모습을 하고 있어 월등도(月登島)라 했다고 전한다.

■새마을운동과 김태업여사 선덕비

중도마을은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에 새마을운동이 이 마을에 모범적으로 확산되면서 주민들이 개척정신으로 황무지 섬을 기름진 땅으로 일구었던 아름다운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후 한때는 가난한 마을이 되기도 했으나 현재는 섬진강으로 인해 퇴적된 기름진 땅을 효율적으로 이용해 양상추, 수박 등 원예작물을 대대적으로 경작하며 부농(富農)을 이루어 젊은이들이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오는 마을이 되고 있다. 

마을 주변에는 비닐하우스 단지가 끊임없이 줄지어 있고, 유리온실도 조성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가길마을에서 들어오는 마을입구에는 김태업여사 선덕비(金太業女史 善德碑)가 서 있다. 

가난한 이웃을 돕고 황폐된 섬을 새마을 정신으로 모진 어려움을 무릎쓰고 잘사는 고을로 만든 공을 기리기 위해 1972년에 마을주민들이 세웠다고 전한다.

지금은 사라진 마조도(馬槽島)는 처음에는 섬의 모습이 말의 구유같이 생긴 모습이라고 해 마조도(馬槽島)라 했으며, 사라지기 전까지는 마조도(磨造島)라 불렀는데 섬진강 가운데 있는 섬이라 대홍수로 인해 조그마한 섬으로 변했고 오랜 세월동안 씻기고 닳아서 된 섬이라 마조도(磨造島)라 했다고 전한다. 마을 주민들은 마도(馬島)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약 150년에 마조도에는 1가구가 살았는데 당시 대홍수로 인해 섬이 사라졌다고 한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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