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題茅齋(제모재) 

                                     유일재 김언기

 

        달빛은 빈 처마에 책상 밝게 비추고

        연기는 성긴 문에 푸름에 이어질 때

        썰렁함 오히려 즐겨 마음속이 한가해.

        月入虛簷明照榻    烟生疎戶翠連山

        월입허첨명조탑    연생소호취련산

        蕭條雖甚吾猶樂    爲是身心兩得閒

        소조수심오유악    위시신심량득한

인적이 끊긴 밤이 깊어질수록 적막함은 더한다. 오히려 적막한 밤이 되면 온통 자연이 친구가 되면서 한가하고 느긋함을 느낀다. 찬바람이 엄습해 온다고 한다. 썰렁한 기분이 감돈다. 이럴 때는 외로움을 느끼고 누군가가 기다려진다. 이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외로움 속의 즐거움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방안의 썰렁함이 이렇게 심하대도 나는 오히려 즐거우니 이는 몸과 마음이 모두가 한가하기 때문이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썰렁함이 심한 대도 나는 오히려 즐겁다네(題茅齋)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율시 후구체다. 작가는 유일재(惟一齋) 김언기(金彦璣:1520~1588)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달은 빈 처마에 들어 책상을 밝게 비추고 / 연기는 성긴 문에서 생겨 푸름이 산에 이어지네 / 방안의 썰렁함이 심하대도 나는 오히려 즐거우니 / 몸과 마음이 모두 한가하기 때문이라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스승 초가집에서 흥취하여]로 번역된다. 시인은 아담한 초가집에서 달과 청산, 아지랑이 같은 자연을 벗 삼으며 강학의 즐거움을 만끽하던 담박한 일생의 모습이 그의 시에서 은은하게 풍겨나온다. 임진왜란의 와중에서 작품이 대부분 소실되어 남은 것이라고 몇 편 되지 않지만 그마나 모아놓은 것이 몇 편이 있어 알 수 있다.

 시인이 지은 시는 구봉령(具鳳齡), 권호문(權好文) 등 명사들과 앉아 차운(次韻)으로 이어졌던 명시로 알려진다. 고려 때 많은 제자를 길러 내었던 문헌공(文憲公) 최충(崔沖)의 몇 편 남지 않은 시 중에서 “뜰 가득 달빛은 연기 없는 촛불이요(滿庭月色無烟燭) / 자리에 비친 산 빛은 초대하지 않은 손님일세(入座山光不速賓)” 라는 구절이 보이는데, 스승으로 자랑하는 모습이 이 시의 정서와 놀랍게도 비슷한 점이 특징이다.

 화자는 부르짖은 스승의 도는 시대를 막론하고 서로 통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후한 때의 위소(魏昭)라는 분은 “경서를 배울 수 있는 스승을 만나기는 쉬워도 타인의 모범이 되는 스승을 만나기는 어렵다(經師易遇 人師難遭)”라고 했으니 새겨볼 일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처마에 든 밝은 달빛 문에 생긴 푸르름이, 썰렁해도 즐거우니 몸과 마음 한가하네’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유일재(惟一齋) 김언기(金彦璣:1520~1588)다. 성품이 돈후하며 진실하였으며 명리에 뜻을 두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몸가짐을 신중하게 하였고, 굳이 남들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았다.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고 은거하면서 독실한 자기의 뜻을 구했으니 남긴 자취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한자와 어구】

月入: 달이 들어오다. 虛簷: 빈 처마. 明照: 밝게 비치다. 榻: 책상. 烟生: 연기가 생기다. 疎戶: 성긴 문. 翠連山: 푸른 산으로 이어지다. // 蕭條: 소소함. 썰렁함. 雖甚: 비록 심하다. 吾猶樂: 나는 오히려 즐겁다. 爲是: ~이다. 이것은 ~이다. 身心: 몸과 마음. 兩得閒: (몸과 마음) 두 가지가 다 한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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