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방마을은 구봉산 아래 황금지구 일원에 자리한 마을로 옛날 황방도요지와 봉화산 광맥과 관련되어 있다. 사진은 위에서 부터 마을전경, 골목길 벽화, 우산각, 황금저수지, 마을회관 순이다.
황방마을은 구봉산 아래 황금지구 일원에 자리한 마을로 옛날 황방도요지와 봉화산 광맥과 관련되어 있다. 사진은 위에서 부터 마을전경, 골목길 벽화, 우산각, 황금저수지, 마을회관 순이다.

황방마을은 구봉산 아래 황금지구 일원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로 고길마을과 광양황금 일반산업단지 사이에 위치한다. 바로 인근에 황금지구 공동주택단지가 들어서 있고, 지난해 골목 벽면을 활용한 벽화 그리기가 눈에 띈다.

■마을유래

황방마을은 본래 광양현 동면(東面) 골약리(骨若里)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골약면(骨若面)지역에 속했다. 

1789년경 호구총수에는 광양현 칠골약면(七骨若面) 황방촌(黃方村)지역이었고,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 행정구역 개편 이전에는 골약면 염포리(塩浦里)・황방리(黃方里)라 하여 2개의 행정리가 있었다.

황방마을은 약 400년 전에 함씨(咸氏)성을 가진 사람이 처음 입촌했으나 그 내역은 알 수 없고, 다음에 경주최씨(慶州崔氏)가 380여 년 전에 봉화산 아래 ‘독정골’에 터를 잡아 처음 살기 시작했다. 

그 뒤 ‘옷밥쟁이’로 옮겼는데 이 지역이 풍수지리상 자손(子孫)이 귀한 형국이라 현재의 마을로 다시 옮겼다고 전해진다.

황방의 공식 명칭은 황방(黃方)인데 이름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온다. 

현재의 중마동 와우(臥牛)의 아랫등 마을과 관련해 와우마을 뒷산의 지세(산등)가 소가 누워있는 형국이라 하여 ‘눈쇠’라 했는데 이를 한문식으로 표기해 와우(臥牛)라 했고 이에 비견해 황방(黃方)은 마을 앞 산등이 마치 소가 누워있는 형국이라 하여 ‘눈실등’이라 했다. 

이 말이 변화되어 ‘누운소’에서 ‘누런소’, ‘누런실’이 되고 황방(黃方)에서 황방(黃坊)으로 변화됐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여기서 ‘방(方)’은 ‘땅’을 의미하고, 방(坊)은 마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황방 도요지와 봉화산 광맥

황방마을에는 조선시대 도기나 토기를 구웠던 가마터가 있다. 이곳 황방 도요지(陶窯址)는 황방마을 황금저수지 북서쪽의 산자락에 위치한다. 마을 안쪽에서 황금저수지 방향으로 가는 농로를 따라 약 3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저수지에 이르게 되는데, 도요지는 저수지와 북서쪽의 산이 만나는 부분에 위치한다. 

북쪽으로는 구봉화산이 있고, 동쪽으로는 낮은 산들이 형성되어 있으며, 남쪽으로는 논들이 펼쳐져 있다. 

마을주민들은 이곳을 ‘황골저수지 사그골’이라고 부른다. 현재 자기편들이 사방 10m 정도의 범위에 깔려있고, 요의 벽편과 소토 덩어리가 보이고 있다. 이 요지에서 출토되는 백자들은 일반적인 식생활 용기로 모두 무늬가 없는 대접, 접시 등이다. 

또 황방마을은 왜정시대 일본인들에 의해 광양광산 채굴・채광실적을 구체적으로 조사한 자료인 조선의 취락(朝鮮의 娶落) 제6장 광산부락 편에 황금리 봉화산 광맥과 관련된 이야기가 기록되어있다.

그 당시 이곳 황금리 일대의 광구에서 금・은을 채광한 실적이 밝혀졌으며, 황방마을의 은장이무덤, 은장이 야파리(은장이 무덤옆에 위치한 산)란 특정지명은 왜정시대 이전에 이미 은장이들이 이곳 골약동 황금리에서 금・은 채광활동을 했음을 반증하는 자료가 되고 있다.

은장이 무덤이라 부르는 은장묘(銀匠墓)는 황금저수지 산 경사면 4~5부 지점에 위치해 있는데 이 일대에서 금이 많이 산출되었을 당시 금을 캐는 기술자가 묻힌 무덤이라고 전해온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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