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松京醉詠(송경취영) 

                                          기봉 백광홍

 

        만월대에 가에서는 술잔을 높이 들고

        오백 년 고려왕조 피리소리 구슬픈데

        궁전은 잡초에 묻혀 누가 알리 그 때를.

        滿月臺邊把一盃    半千基業笛聲哀

        만월대변파일배    반천기업적성애

        誰人認廳當時事    宮殿荒凉但草萊

        수인인청당시사    궁전황량단초래

질풍노도와 같이 밀려드는 외세, 신진세력에 의한 개혁의 진풍경 속에 고려 말의 세태는 요동쳤다. 특히 위화도 회군 이후에 왕조는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백년 도읍지를 뒤로 하고 개경이 폐허된 이후 황량하기 그지없이 그저 잡초에 묻혀 버렸다. 이런 역사의 단면을 잘 알고 있는 시인이 송경을 지나면서 어찌 시가 없겠는가. 만월대 가에서 술잔을 높이 들고 보니, 오백년 왕조가 피리 소리로 구슬프기만 하구나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궁전은 황량하기 그지없고 잡초만 저리 우거졌네(松京醉詠)으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기봉(岐峯) 백광홍(白光弘:1522∼1556)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만월대 가에서 술잔을 높이 들고 보니 / 오백년 왕조가 피리 소리로 구슬프기만 하구나 // 누가 그 때의 일을 자세히 알고 들었을까 / 궁전은 황량하기 그지없고 잡초만이 우거져 있구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송경(개성)에서 취하여 읊음]로 번역된다. 조선왕조를 500년(1392~1910)이라고 하는 만큼, 고려왕조도 500년(877~1392)을 가름하여 입언저리에 올린다. 500년동안 도읍지였으니 하 많은 사연과 역사의 흔적을 남겼을 것은 분명하다. 지금은 가로막힌 철조망 때문에 가지 못하고 그리워만 하는 동토의 땅이지만 시인에 살았던 시대에는 마음 대로 넘나들었다.

 시인은 이런 점에 착안하여 송경을 찾는 마음은 착잡했을 것이다. 그래서 만월대 가에서 술잔을 높이 들고 보니, 오백년 왕조가 피리 소리로 구슬프기만 하구나 라는 시상을 떠올렸다. 조선의 많은 시인들은 개성을 찾아 회고에 젖은 시를 남겼고 한과 회포까지도 남겼다. 만월대는 송악산 아래를 깎아 내려 지은 고려의 왕궁이 있었던 터다.

 화자는 번성했던 고려 왕조를 회고하며 그 때 일을 물어 본다. 누가 번성했던 그 때의 일을 자세히 알고 들었을까 라고 물으면서 궁전은 황량하기 그지없고 잡초만이 우거져 있구나 라고 화상했다. 없어진 왕조의 기틀을 잘 보전하는 일은 후진의 일이겠지만 새 왕조는 그렇지 않는 것이 대체적인 경향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술잔 높이 들고 보니 오백년 왕조 슬프구나, 그 때 일 누가 아나 잡초만이 엉성하게’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기봉(岐峯) 백광홍(白光弘:1522∼1556)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아버지 백세인, 어머니 광산김씨이다. 어려서는 ‘봉명재’란 서당에서 수업을 하였고, 후에 시산에 있던 이항에게 가서 공부하였다. 이 무렵에 신잠과 교유하면서 학문과 철학을 논했다. 저서로 <기봉집>이 전한다.

【한자와 어구】

滿月臺: 만월대. 개성에 있던 고려의 수도터. 邊: 가. 把一盃: 한 잔 술을 들다. 半千: 반천년. 곧 500년. 基業: 왕업. 기초가 되었던 터전. 笛聲: 피리 소리. 哀: 슬프다. // 誰人: 누가. 認廳: 인정하고 들었다. 當時事: 당시의 일들. 宮殿: 궁전. 荒凉: 황량하다. 但: 다만. 草萊: 잡초만이 우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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