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마을은 수평천이 시작하는 마을로 옥곡면에서 가장 산중인 매남마을을 포함한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마을전경, 수평천, 마을회관, 매남 정자나무, 수평저수지 순이다.
수평마을은 수평천이 시작하는 마을로 옥곡면에서 가장 산중인 매남마을을 포함한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마을전경, 수평천, 마을회관, 매남 정자나무, 수평저수지 순이다.

수평마을은 옥곡 대죽마을과 백양마을을 잇는 대치길을 지나 수평저수지 위쪽에 자리한 마을이다. 마을 서북쪽에 옥룡면 용곡리로 가는 땅재 고개가 있으며, 북쪽에는 진상 웅동 곰골로 가는 고개가 위치한다. 옥곡천과 만나는 수평천이 이 마을에서부터 시작한다.

■마을유래

수평마을은 본래 광양현 동면(東面) 옥곡리(玉谷里)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옥곡면에 속했다. 1789년경 호구총수에는 광양현 옥곡면 수평촌(水平村)지역이었다.

마을의 시작은 1580년경 김해김씨(金海金氏)가 처음 이곳에 들어와 정착하면서라고 전한다. 

입촌 사연은 김씨가 역모에 가담했다가 피난을 온 것인데 마을 가운데 큰 바위에다 자기 이름인 ‘수평(壽坪)’이라 새기고 정착했다고 전한다.

마을이름은 수평(壽坪)에서 수평(水平)을 거쳐 수평(水坪)으로 바뀌어 왔는데 이는 마을 이름을 쉽게 쓰기 위한 것이라 한다. 

마을주민들은 ‘수평’이라는 이름 대신 ‘수패골’, ‘수펴울’, ‘수평동’으로도 부르고 있다.

수평(水坪)의 의미를 옛말의 변천 과정으로 살펴보면 숲(林)이 많다는 의미, 즉 ‘숲이 우거진 고을’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마을 동쪽에 있는 점터라는 골짜기에는 쇠를 녹여 물건을 만들던 철점이 있었으며, 서쪽의 촛대봉에는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가 명당이라 하여 묘를 썼다는 자리가 있었다고 전해온다. 윤선도가 광양에서 살았던 흔적은 각종 문헌 등 사료에 나타나는데 고산 윤선도가 살았던 옛 집터라고 추정되는 자리가 옥룡면 추산리 추동마을에 남아 있다.

■매남마을과 격동기의 현장

수평마을은 행정리 상으로 마을 서북쪽 300m 지점에 ‘매내미’라고 부르는 매남마을까지 포함한다. 

수평마을 입구에 마련된 표지석에는 마을의 유래와 함께 매남마을을 소개하고 있다. 

매남마을은 10여호의 가구가 살고 있으며, 옥곡면에서 가장 산중마을로 알려진다.

매남마을은 산 너머 마을이라는 뜻이며, 매화낙지(梅花落地)라는 명당 풍수설이 전해온다. 산중마을이라서 공기 좋고 물이 맑아 예부터 영특한 인물이 많이 배출됐다고 하며, 영농규모는 영세하고 논배미는 한평이 안되는 것이 있지만 토질이 좋고 미질이 양호해 이곳에서 나는 쌀이 밥맛이 좋기로 이름나 있다.

매남마을 입구에는 수령이 200년이 넘은 당산나무가 있는데 마을 주민들의 휴식처로 사용되고 있으며, 명절이면 이곳에서 매구를 치고 소원을 빌었다고 전해온다.

한편, 수평마을은 여순사건과 6・25전쟁 시기 민간인의 집단 희생이 많이 발생했던 마을이다. 

1948년 12월 20일 옥곡면 수평리 매남마을 주민이 빨치산의 짐을 날랐다는 이유로 옥곡지서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인근에서 살해됐으며, 1953년 6월에는 옥곡면 수평리 수평마을 주민이 매남마을 뒷산에서 군인에 의해 희생됐다고 전해온다. 

수평마을은 전쟁의 상흔과 고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격동기의 현장이라 하겠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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