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양마을은 동광양 톨게이트가 있는 고삽치 고개 언저리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이다. 사진은 마을전경, 마을회관, 당산나무, 마을정자, 마을로 가는 터널 순이다.
중양마을은 동광양 톨게이트가 있는 고삽치 고개 언저리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이다. 사진은 마을전경, 마을회관, 당산나무, 마을정자, 마을로 가는 터널 순이다.

중양마을은 중마동에서 광양읍으로 넘어가는 길에 있는 고삽치(高揷峙) 고개 언저리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 바로 앞쪽에 동광양 톨게이트가 위치하고 있다. 마을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옛 골약역이 있는 국도를 이용하면 된다.

■중양마을 형성 및 유래

중양마을은 중군지역에서 으뜸이 되는 마을로 약 270년 전에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처음 입촌해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이 마을은 고려 또는 그 이전에 이 지역의 지방행정 단위였던 아마대부곡(阿磨代部曲)이라는 특수 지명이 있어 고려시대부터 이 마을에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양마을의 이름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조선시대 이 지역에서 옹기를 구웠다는 사실이 있어 ‘옹구점’으로도 불렸다. 마을사람들에 의하면 왜정시대 초기까지 곳곳에 가마터(도요지)가 남아 있었다고 전한다. 

지금은 마을 앞으로 남해고속도로의 인터체인지, 동광양으로 진입하는 4차선 도로개설 등으로 옛 마을의 모습이 크게 변모되어 그 흔적을 찾을 수는 없다.

아마대부곡(阿磨代部曲)이 있었던 시대에 지금은 사라진 마을 서쪽 ‘범바구’ 근처 원터골에는 당시 공무여행자의 숙식을 제공하던 원(院)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아마대부곡 지역에 아마대원(阿磨代院)이 위치한다고 기록되어있다.

또 이 마을에는 삼한시대에 쌓았다는 성(城)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는데 중군현성지(中軍縣城址)라 하며 당시 주로 해안서 경비를 목적으로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도고개의 전설과 특정지명

중양마을은 재동(才洞)마을 남쪽에서 중양마을로 넘는 고개에 ‘아마도고개’의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옛날 장성한 남매가 이 고개를 넘게 되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옷이 빗물에 흠뻑 젖어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앞에 가던 누님의 옷이 빗물에 젖어 속살에 달라붙게 되자 뒤따르던 남동생이 이를 보고 불칙한 생각이 들게 됐다. 이에 남동생은 잠깐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반성한 나머지 죄책감으로 자신의 성기를 돌로 찍어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앞서 가던 누님이 고개를 다 내려와도 동생이 보이지 않자 동생을 기다리면서 뒤늦게 따라 오겠지하면서 ‘아마도’를 반복하며 기다리다 다시 왔던 길을 가보니 동생은 이미 그렇게 죽어 있었다고 한다. 이 전설은 옛날 아마대부곡이 이 근처에 있었던 연유로 어느 누가 만들어 낸 이야기란 설도 있다.

아마는 민등머리란 의미가 있는데 이와 관련해 이 고개를 현재는 중재라고 부르며 이곳 골짜기를 민등골이라고 한다.

또 다른 특정지명으로는 딧골, 둠밧골, 개구리 바구 등이 있다. 딧골은 둠밧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며, 둠밧골은 엄밭골이라고도 하는데 가장골의 동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개구리 바구는 마을 앞의 논 가운데 있었던 개구리 형국의 바위로 인터체인지가 건설되면서 사라졌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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