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신대 이경모 카메라박물관에서는 1890년부터 2000년대 초까지 시대별로 사진기를 감상할 수 있다.
동신대 이경모 카메라박물관에서는 1890년부터 2000년대 초까지 시대별로 사진기를 감상할 수 있다.
100년 전 스튜디오 감성으로 플라로이드 사진을 촬영한다.
100년 전 스튜디오 감성으로 플라로이드 사진을 촬영한다.

카메라 100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동신대 이경모 카메라박물관

지난해 전남도립미술관에서는 대한민국 기록 사진계의 거목, 이경모 선생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조망하는 전시회가 개최됐다. 미술관 개관 이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사진전이며, 국공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최초의 이경모 개인전이었다.

전남도립미술관에 이경모 사진전이 개최될 수 있었던 것은 이경모 선생이 여순사건과 6·25 한국전쟁 등 대한민국의 아픈 격동기의 순간들을 현장에서 직접 촬영하며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사진으로 기록한 큰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최근 여순사건과 관련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여순사건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이경모 선생의 사진도 주목받고 있다.

이에 광양만신문은 이경모 선생의 발자취를 더듬어 그가 남긴 사진의 가치를 제대로 알리고 나아가 이경모 선생의 고향인 광양에 그를 기억하고 그가 남긴 카메라와 사진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경모 기념관 언제 건립되나

이경모 선생은 그동안 광양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광양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최근 들어 광양문화원과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이경모 선생 사진전이 열리면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을 뿐이다. 

이경모 선생의 아들인 이승준 씨가 지난해 정인화 광양시장을 만나 이경모 선생의 필름 5만여장과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카메라 300여점, 기록자료 등을 광양시로 기증하기로 약속했다. 

또한 정인화 광양시장도 기증받은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향후 국가등록문화재 등재 신청과 더불어 시의 문화사업들과 연계한 이경모 기념관 건립 추진의 토대로 마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가 높은 상황이지만 이경모 기념관을 만들자는 의견이 나온 지 1년이 다 되도록 아직까지 세부 내용이 없는 실정이다.

이승준 씨는 광양에 애착을 갖고 광양에 이경모 기념관이 세워지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광양시와의 좋은 관계가 앞으로도 계속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광양시는 현재 관광도시로의 재도약과 문화도시로 가기 위해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문화도시로 가기 위해 새로운 것을 발굴할 것이 아니라 ‘이경모 선생’이라는 콘텐츠를 사용하자는 지역 여론이 제기되고 있어 광양시의 바른 판단이 필요할 시점이다.

■이경모 선생의 업적

이경모 선생은 1926년 전남 광양에서 아버지 이문화와 어머니 허봉남의 8남 7녀 가운데 3남으로 태어났다.

이경모 선생이 카메라를 처음 접한 것은 1939년 광주서중 입학 선물로 조부로부터 카메라를 받으면서다. 이를 계기로 사진가의 길을 걷게 된 동기가 됐다.

이경모 선생은 1946년 지금의 광주일보 전신인 호남신문사 사진부장을 맡아 본격적인 사진 활동을 시작했는데 호남신문사에 들어가게 된 것은 노산 이은상과의 인연 때문이다. 노산 이은상은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광양으로 내려와 은둔 생활을 했는데 이때 이경모 선생의 부친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경모는 당시 심부름을 자주 하곤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바로 노산이었다. 해방이 된 후 노산은 광양자치위원회의 부위원장으로 추대됐고, 곧바로 광주로 올라가 호남신문을 맡게 됐다. 이 인연은 결국 이경모를 호남신문 사진기자로 끌어들이는 계기가 됐다.

이경모 선생은 이때부터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였던 1946년부터 1953년까지 광주, 여수, 순천, 광양 등에서 중요한 사건들을 사진으로 기록할 수 있었다.

특히 여순사건 당시 1948년 10월 22일 순천과 23일 광양, 24일 여수에서 수많은 사진을 찍었다.

이경모 선생은 10월 20일 아침 신문사에 출근해 여수·순천에서의 사건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가려고 했으나 현장 접근이 쉽지 않아 21일 늦은 저녁에서야 순천에 도착했다.

그는 22일부터 취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순천시 곳곳에서 반군과 토벌군 간의 시가전이 진행 중이면서 총탄에 맞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 연출됐다. 순천시내 검찰지청 자리에 토벌대 본부가 설치되고 토벌대 사령이 기자회견을 했을 때 이경모 선생은 당시 국내 언론사 중 유일한 사진기자였으며 여순사건을 취재한 최초의 종군기자였다. 

이후 1950년 6.25 한국전쟁 시에는 국방부 정훈국 보도과 사진대 소속으로 한국전쟁의 중요한 순간들을 촬영해 기록으로 남기는 업적을 남겼다. 그때 촬영한 그의 사진들은 아직까지도 매우 소중한 기록이 되고 있다.

전쟁 후 1953년부터 국무총리 공보비서관으로 근무하면서 전후복구와 발전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여기에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사진 부분 심사위원을 1964년부터 1981년까지 13회나 역임했으며 1968년부터 1992년까지 사진업에 종사하면서 한국의 초기 컬러사진 발전에도 기여했다.

■동신대 이경모 카메라박물관

우리나라에 이경모 선생과 관련된 기념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주에 있는 동신대에는 이경모 카메라 박물관이 있다. 

지난 6월 동신대학교는 코로나19 이후 재개관을 계기로 유족의 동의를 얻어 이경모 선생의 이름을 카메라박물관에 붙였다.

동신대 이경모 카메라박물관은 전 세계 카메라의 100년 역사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데, 동신대는 객원교수였던 이경모 선생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세계 각국의 카메라 1400여대와 사진 작품을 기증받아 1996년 11월 카메라박물관을 개관했다.

1996년에 개관한 동신대 박물관은 그전까지 영상박물관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2011년 동신대학교 문화박물관을 거쳐 2023년 대정문화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 가운데 이경모 선생의 뜻을 기리기위해 시설을 갖추고 박물관 소속의 이경모 카메라박물관과 대정미술관으로 나눠 재개관한 것이다.

이경모 카메라 박물관에서는 사진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1890년대부터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털카메라로 전환이 시작된 1990년대까지 카메라 340여대가 전시되고 있다.

1889년 미국 코닥사의 첫 상용 사진기 ‘코닥 넘버 1’을 시작으로 소형사진기의 표준을 제시한 1925년 독일 ‘라이카’, 1948년 최초의 폴라로이드 사진기, 1950년대 이후 일본 니콘, 캐논 사진기 등 18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시대별 사진기를 감상할 수 있다.

■카메라의 100년 역사

코닥 ‘브라우니’(1890)는 간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롤 필름 방식을 세계 최초로 도입해 사진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1925년 독일의 기계공학자 오스카 바르낙은 35mm 롤 필름을 사용하는 작고 가벼운 ‘라이카’ 카메라를 만들었다. 휴대가 편리하고 빠른 촬영이 가능해 당시 사진가들은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생생하게 기록할 수 있었다. 수많은 종군기자가 애용한 카메라가 이 제품이다.

1948년 미국의 폴라로이드사는 3분 만에 사진을 만들어 내는 ‘폴라로이드 랜드95 카메라’를 출시하면서 사진의 발달사에 한 획을 그었다.

1954년 일본 아사히 공학사는 당시 혁신적인 기술로 평가받은 ‘일안반사’ 방식의 ‘아사히 플렉스 카메라’를 출시하게 되는데, 이 카메라는 세계 시장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이후 니콘, 캐논, 야사카 등 일본 카메라 회사들이 일안 반사식 카메라를 생산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선두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1963년 자동노출 제어기능을 가진 카메라가 출시됐으며, 1977년에는 자동초점 기능을 가진 카메라 ‘코니카 C35 AF’, 1978년에는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스템을 장착한 ‘캐논 A1’ 등 다양한 자동화 기능을 가진 카메라들이 출시됐다.

1981년에는 소니사가 최초의 상용화된 디지털카메라 ‘마비카’를 출시하게 된다. 1990년대의 카메라는 자동노출과 자동초점, 고성능 모터 드라이브 기능이 탑재되며 고급 일안반사식 카메라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2002년 이후 캐논, 니콘 그리고 소니를 중심으로 카메라 회사들이 경쟁적으로 디지털카메라를 출시하며 디지털 사진의 시대를 이끌었다.

특히 박물관에는 이경모 선생이 여순사건을 취재했던 ‘미놀타 베스트2’와 한국전쟁 당시 들고 나갔던 ‘코닥 스페셜 반탐’ 사진기들도 전시돼 있어 눈길을 끈다. 이러한 카메라를 비롯해 이경모 선생을 알리는 기념관이 광양에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양재생 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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