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강 김철선생 기념관 건립 이어 항일 역사의 산실 상해임시정부 청사 국내 최초로 재현 

김철기념관 전경
김철기념관 전경

■김철 기념관

전남 함평군 신광면에는 호남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인 일강김철(一江金澈) 선생의 애국정신과 호국충절을 계승하기 위한 기념관이 있다. 이 기념관은 1만 770㎡의 부지 내에 김철 선생의 사당, 수양관, 기념관, 상해임시정부청사 등으로 구성돼 있다.

김철 기념관을 방문하면 무궁화꽃받침 위에서 오른손을 들어 방문하는 이들을 반기는 김철선생의 동상이 눈에 띈다. 이곳에서는 문화해설사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관람할 수 있다.

김철선생 기념관이 이곳에 들어서게 된 이유는 김철선생이 함평출신이며 이곳에 김철선생의 생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철 동상과 생가터를 지나면 비로소 기념관이 나온다.

기념관은 김철 선생의 출생과 성장에서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의 활동 및 서거에 이르는 일대기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1918년 상해에서 동지들과 함께 신한청년당을 조직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의 활동 등을 참고사진을 중심으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또 김철 선생의 생애를 삽화로 제작해 김철 선생의 중요 활동상을 소개하고 김철 선생의 영정사진과 어록, 김철선생의 서거를 보고한 임시정부의 문서와 묘비 등의 추모내용까지 소개하고 있다.

김철기념관은 김철 선생 생전의 사진, 유물 등과 함께 활동했던 독립운동 당시의 각종 자료가 전시되고 임시정부 회의 장면 등을 재현하면서 김철 선생의 애국정신을 재조명하는 교육의 장이자 김철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역사적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문화의 장이 되고 있다.

김철기념관내 자료와 사진들.
김철기념관내 자료와 사진들.

김철 선생의 생애

일강 김철 선생은 1886년 전라남도 함평군 신광면 함정리 구봉마을에서 아버지 김동진과 어머니 전주 이씨 사이에서 4남 1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김철은 영광군 묘량의 외가에서 서당에 다니며 한학을 공부했으며, 1908년 영광 광흥학교에 입학했다. 

1909년 경성법률전수학교에서 법률을 공부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 대학 법과를 졸업했다. 

1915년 귀국해 지식인으로서 빼앗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일제로부터 조선총독부에 협력하라는 권유와 협박을 받자, 1917년 함평을 떠나 중국 상해로 망명을 떠난다.

김철은 1918년 여운형, 장덕수 등과 함께 신한청년단을 조직하고, 1919년 1월 김규식을 파리강화회의에 대표로 파견했다. 또한 독립운동의 활발한 전개를 위해 김철선생과 서병호 선우혁 등을 국내로, 여운형은 만주와 연해주로, 장덕수는 일본으로 파견했다.

국내에 잠입한 김철 선생은 당시 천도교 교주였던 손병희를 만나 3.1운동의 전개를 협의하고 독립운동자금을 지원받았으며 기산도 등의 동지들과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했다.

김철선생은 1919년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원으로 활동하며 교통차장과 교통총장 대리 등을 역임했고, 1926년 이동녕, 김구 등과 함께 국무위원에 선출되어 활동했다.

이외에도 김철선생은 각종 독립운동단체의 결성에도 참여해 1920년 1월 김구 등과 함께 군사 양성을 위한 의용단을, 3월에는 안창호 등과 함께 선전위원회를 조직해 할동했다. 

또 193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장이었던 김철 선생은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이봉창 윤봉길과 함께 한인애국단의 활동을 지원했다.

1934년 6월 29일 김철 선생은 격무에 겹친 급성 폐렴으로 조국 독립을 보지 못한 채 중국 항저우에서 서거했다.

함평군은 김철선생 기념관에 국내 최초로 상해임시정부청사를 재현했다. 지상 3층 규모로 재현된 임시정부 청사 모습.
함평군은 김철선생 기념관에 국내 최초로 상해임시정부청사를 재현했다. 지상 3층 규모로 재현된 임시정부 청사 모습.

■김철 기념관 건립과정

김철 선생은 1919년 1월 여운형 등과 신한청년단을 조직하고 구국의 첫 사업을 시작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다가 1934년 48세의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 임시정부의 교통차장, 국무위원, 군무장, 재무장, 국무회의비서장 등을 역임했다.

또한 3・1운동을 손병희 등과 협의하고, 천석군에 달했던 재산을 처분해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한 애국지사로 1962년 3・1절에 대한민국 건국훈장 국민장에 추서됐다.

이러한 선생의 독립정신과 고귀한 업적을 계승하기위해 함평군은 1997년에 국가보훈처와 전라남도에 건의해 국・도비 지원을 받아 2003년 김철 기념관을 건립하게 된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일강 김철선생 생가터 주변에 부지 1만 770㎡를 매입완료하고, 

1999년부터 2003년 6월까지 5년간에 걸쳐 국비 5억원, 도비 5억 3천만원, 군비 11억 4천 3백만원인 총 사업비 21억 7천3백 만원을 투입해 부지정비, 사당건립, 기념관, 동상 주차장등을 2002년도에 완료했다.

2003년도에는 기념관 내 일강 김철 선생에 대한 독립운동자료를 수집해 전시했고, 2009년 6월에는 사업비 22억여 원으로 민족혼이 깃들어 있는 상해임시정부 청사 재현 사업을 완료했다.

독립운동가 일강 김철 선생의 추모 행사는 신광면 청년회 주관으로 1999년부터 8월 15일 광복절에 추모식을 실시해 왔으나 2009년도부터는 일강 김철 선생의 서거일(6월 29일)을 기념해 6월 호국보훈의 달에 맞춰 추모 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재현된 임시정부 청사 내 회의실 모습. 이곳에 전시된 각종 가구 등은 중국 현지에서 직접 제작해 사실성을 높였다.
재현된 임시정부 청사 내 회의실 모습. 이곳에 전시된 각종 가구 등은 중국 현지에서 직접 제작해 사실성을 높였다.

■함평에 품은 임시정부

김철기념관에서 ‘상해임시정부청사 역사관’이라는 특별한 장소가 있다. 이 역사관은 임시정부가 상해에서 네 번째로 마련했던 청사이자 가장 오랜 기간 사용했던 건물을 함평에서 그대로 재현한 공간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탄생시키는 태동기역할을 담당했던 임시정부청사를 국내 최초로 재현해 의미가 남다르다.

2009년 개관한 상해임시정부 청사는 연면적 876㎡, 지상 3층 규모로 조성돼 있으며, 입구에는 김구 선생 동상이, 앞마당에는 안중근 장군 기념 동상이 세워져 있다.

건물은 총 3층, 3개 전시실로 구성됐으며, 건물 내부에는 김구 선생 집무실, 정부 집무실, 회의실, 화장실, 이봉창·윤봉길 등 독립운동가들이 임시숙소로 사용했던 침실이 100년 전 모습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1층 전시실에서는 우리 민족의 역량을 하나로 모은 임시정부의 역사를 통해 상해임시정부청사가 갖는 의미를 깨닫고, 독립운동에서부터 광복까지의 이야기를 유물과 함께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임시정부와 김철선생의 발자취와 독립을 위해 나라를 되찾기 위한 광복군의 훈련모습을 볼 수 있다.

2층 전시실에는 독립운동 당시 일제가 자행한 야만적인 고문을 주제로 사진기록과 고문도구를 사실적인 기법으로 배치해 관람객들이 이해하기 쉽고 체험할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다.

3층 전시실에는 1920년대 상해 한인거주지 거리를 재현한 진시실로 국내뿐 아니라 국외의 독립운동가와 함평 출신 독립운동가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특히 함평 독립운동역사관은 중국에 있는 상해임시정부청사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을 뿐만 아니라 책상, 침대 등 각종 소품까지도 중국 현지에서 직접 제작해 남다름을 보여주고 있다.

일강 김철 선생은 고향에 있는 많은 재산을 처분해 상해임시정부청사를 마련하는데 기여하고 나머지는 독립운동 자금으로 썼다. 그 뒤에는 상해 임시정부 수립과 운영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숭고한 독립애국정신을 기리고 후세들에게 애국충절과 호국보훈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선생의 고향인 함평에 상해임시정부청사가 재현하게 된 것이다.

양재생 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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