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庄雨夜(산장우야)

                                           제봉 고경명

        어젯밤에 송당에는 밤비가 내리고

        시냇물의 소리를 누워서 들었는데

        새벽녘 나무 둥지에 자던 새가 있구나.

        昨夜松堂雨    溪聲一枕西

        작야송당우    계성일침서

        平明看庭樹    宿鳥未離樓

        평명간정수    숙조미이루

산장에서 하룻저녁을 묵었던 모양이다. 소나무 현(絃)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고, 새소리가 장단을 맞춘다. 개울 흐르는 물소리가 하모니를 이루면 더 없이 정다운 자연현상이 아니랴. 굳이 시인이 아니라도 솟아오르는 시심들이 저절로 발현되리라. 깜박 졸음이 왔던지 잠깐 눈을 부치는 순간 가만히 새 한 쌍이 나무 둥지에 와서 잤던 모양이다. 조용한 새벽녘 뜰의 나무들을 바라보니 자던 새는 아직도 둥우리를 떠나지 않네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자던 새는 아직도 둥우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데(山庄雨夜)로 제목을 붙여 보는 오언절구다. 작가는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1533∼1592)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어젯밤에 송당에는 비가 내리고 / 서쪽 시냇물에서 흐르는 소리 누위서 듣네 // 조용한 새벽녘 뜰의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 자던 새는 아직도 둥우리를 떠나지 못했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산장엔 밤비가 내리는데]로 번역된다. 산장에서 잠을 청했던 모양이다. 인가에서 듣지 못한 시냇물 소리가 들리고, 새소리도 들렸다. 아침이면 조잘조잘 하던 새도 엊저녁에 무슨 일이 있었던지 여느 날 같지 않다. 가만히 들여다 보니 소나무 위의 안식처럼 튼튼하게 지어놓은 송당(松堂)에서 늦잠까지 자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한가롭기 그지 없는 정경이다.

시인은 산장에서 보았던 위와 같은 일을 자세히 보면서 시상을 일으키고 있다. 어젯밤에 송당에는 비가 촉촉이 내렸고, 서쪽 시냇물에서 흐르는 소리를 누위서도 들을 수 있네 라는 시심이다. 사람이 사는 인가에서는 쉽게 들을 수 없는 냇물의 소리다. 여느 때 같으면 냇가에 가까이 갔을 때 들을 수 있는 소리련만 산장에 누워서도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냇물이 많이 불었다.

 화자는 후정의 튼튼한 다리(橋)를 놓는데 분주한 모습을 보게 된다. 바람도 없이 조용한 새벽 뜰의 나무들을 물끄럼히 바라보고 있노라니, 해가 석양을 재촉하자마자 잠들었던 새가 아직도 둥우리를 떠나지 못하네 라고 했다. 냇물 소리에 시끄러워 아침잠이 곤했던 모양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송당에는 비 내리고 서쪽 시내 소리 듣네, 뜰 앞 나무 바라보니 자고 있는 둥지 새만’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1533∼1592)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의병장이다. 다른 호는 태헌(苔軒)이라고도 했다.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1552년(명종7) 사마시에 합격 진사가 되고, 1558년(명종 13) 왕이 직접 성균관에 나와 실시한 시험에서 수석했다. 당시에 억울하게 죽었다.

【한자와 어구】

昨夜: 어젯밤. 松堂: 송당. 새들이 자고 있는 소나무에 튼 둥지. 雨: 비가 오다. 溪聲: 시냇가의 물 소리. 一枕: 눕다. 西: 서쪽. // 平明: 평일. 보통날. 看: 바라보다. 庭樹: 정원의 나무. 宿鳥: 새가 잠자다. 未: 아직도 ~하지 못하다. 離樓: 누각을 떠나다. ‘樓’는 ‘새의 둥지’를 이렇게 표현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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